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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백사당』 감상문

by 01사금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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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공포 단편 소설 『붉은 눈』을 읽고 작가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흥미로운 소설들은 없는지 찾아보니 도서관에 종류가 제법 있었는데 아쉽게도 제가 좋아할 단편소설집은 『붉은 눈』 하나 한정이고 나머지 소설들은 대개 긴 장편소설들이 다수더군요. 어떤 소설은 한 권으로 완결이지만 어떤 소설은 상하 연작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제가 단편을 장편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공포 소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편소설도 읽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 이번에 한번 책을 빌려왔습니다. 다만 작가의 다른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으므로 여러 책이 놓여 있을 때 순전히 눈에 더 끌리는 것으로 빌려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 『백사당』은 다른 책들보다 표지가 심플한데 강렬한 것이 꽤 무서운 느낌도 났으므로 이것으로 정하고 빌려왔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다 보니 순서대로 읽자면 작가의 다른 소설인 『기관,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을 먼저 빌려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은 특이하게 주인공의 이름과 작가의 이름이 같은 미쓰다 신조인데다가 주인공의 직업도 호러 소설가에 기이한 사건을 취재하는 일을 겸하다 보니 작가의 성격이나 의식이 많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읽다 보면 마치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전해 듣는 느낌도 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리는 만무하고 소설의 일이 벌어졌다면 결말 때문에 이 이야기가 나올 리도 없을 테니 참 훌륭한 효과를 노린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설의 시작은 소설 시상식이 벌어진 호텔에서 주인공인 미쓰다 신조가 이번에 출판사에서 책을 낼 예정이 된 노인 '다쓰미 미노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됩니다. 미쓰다는 다쓰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해 주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나중에 그가 쓴 자서전 격인 소설-이라고 하지만 매우 기이한 경험담으로 가득한-을 읽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원고에 정신없이 빠져들던 미쓰다와 그 주변 동료들에게 이상한 일이 하나씩 벌어지게 됩니다.


이야기의 중심 사건은 다쓰미의 본가의 햐쿠미 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과 햐쿠미 가 특유의 장송백의례라는 장례 절차인데 할머니의 장례식 와중에 갑자기 아버지가 홀연히 사라지고 어린 다쓰미는 '마모우돈'이라 부르는 뭔가에 습격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나중에 이 마모우돈이라는 요괴의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 밝혀지지만 마모우돈은 외도한 남편에게 원한을 품고 죽은 다쓰미의 새어머니의 혼령이며 정확하게는 대대로 햐쿠미 가에게 능욕당한 여성들의 원한이 만든 존재라는 게 암시됩니다. 거기다가 심지어 어린아이를 습격한 사건의 정체도 이 마모우돈이라는 것이 드러나며 어린아이를 습격한 것도 아이의 생기를 빼앗으려는 것이고 노인처럼 보였던 다쓰미도 실은 아직 삼십 대 후반 정도임에도 어머니 마모우돈에게 계속 생기를 빼앗겨 원래 나이대보다 노안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반전이 드러나지요. 책에서는 주인공들이 말려든 중심 사건 말고도 일본 소설 출판계에 관련된 이야기라든가 공포나 기담 장르의 출판물에 대한 부수적인 설명을 비롯 일본 각 지방 특유의 기묘한 풍속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는 등 재미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 큰 반전은 후반에 다시 등장하는데 소설 내내 미쓰다와 다쓰미는 고향이 같다는 언급이 있는 등 무언가 더 강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 암시됩니다. 거기다 사건을 유발한 것이 햐쿠미가 가에 얽힌 인습과 또 거기에 새겨진 오랜 원한 때문만은 아니며 그 주변에 있던 신산(神山)인 도도야마 산과도 얽혀있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이 도도야마 산은 금지된 산으로 취급받고 혼자 올라가는 것은 영향이 없으나 둘 이상 올라가면 뭔가 변화가 생기거나 해를 입는 등 어찌 보면 일본 괴담 특유의 성역이나 금지 구역에 대한 금기를 엿보게 해 주는 장소임을 알 수 있어요. 그 효과도 특이해서 둘 이상 올라가면 서로의 성격이 바뀐다거나 혼이 바뀌는 것 같은 언급이 있어 소설은 약간 체인질링 느낌도 나는 등 기묘한 결말을 맺습니다. 소설은 햐쿠미가에 얽힌 기묘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등 추리소설 같은 느낌도 나지만 검은 모습을 한 여자가 희생자를 집요하게 쫓아오는 묘사는 밤에 읽을 때에는 꽤 오싹한 구석도 없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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