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는 이 3권부터가 본격적인 서유기의 시작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일단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오정이 등장함으로써, 『서유기』의 메인 멤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오정이 등장하기 이전 황풍령에서 황풍대왕과 싸우는 이야기가 계속되는데요. 황풍대왕은 삼매신풍이라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이 바람 때문에 손오공은 눈병이 나는 곤란을 겪습니다. 그리고 황풍령 근처의 민가에 의탁하여 눈병을 치료할 약을 얻는데 알고 보니 이 민가는 삼장법사를 호위하는 호법 가람신들이 변장한 것으로 보통 토지신이 변장한 것은 금새 알아채는 손오공마저 처음엔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전권에서 황풍대왕을 조심하라 일러준 민가의 사람들은 그냥 인간이었던 모양.
모기로 변신하여 황풍대왕의 동굴 속에 숨어든 손오공은 자기 바람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영길보살 뿐이라는 황풍대왕의 말을 듣고 옳다구나 하면서 나오는데요.
영길보살의 거처를 알 수 없자 참 고전스럽게도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는데 1권서부터 손오공에게 호의적이던 태백금성이 지나가던 노인으로 변장하여 영길보살의 거처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영길보살에 의해 황풍대왕은 본모습을 드러내고 끌려가지요. 황풍대왕의 정체는 누런 털을 가진 담비였습니다. 이 황풍령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고대하던 사오정이 등장합니다. 유사하가 너무 넓어 건너가는 것이 어려워질 때 사오정이 나타나 삼장을 채가려 하자 손오공과 저팔계가 싸우게 되는데 아무래도 밀리는 사오정은 자꾸 강속으로 도망가버리는데요.
여기서 하나 구름을 탈줄 아는 것은 손오공만이 아니라 저팔계도 마찬가지라고 언급되는데 근두운이나 저팔계의 구름은 정말 구름이고 술법을 쓸 수 있는 자만이 타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술법과 거리가 먼 삼장은 태울 수 없고, 게다가 삼장의 예정된 고난을 이겨내야만 진경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애초에 근두운에 태울 수 없다고 손오공이 말하는데요. 그런데 일단 요괴로 인해 곤란한 일이 생기면 손오공은 관음보살이 거처하는 남해 보타산을 찾아가 해결해달라고 떼쓰는 일이 많습니다. 관음보살은 손오공의 급한 성정을 야단부터 치면서도 도와주는데 여기선 제자인 목차행자가 따라가서 사오정을 불러 이들이 같이 가야할 스승과 사제들임을 일러줍니다.
유사하 이야기가 지나가면 서유기 내 가벼운 에피소드 중 가장 웃긴 '과부와 세딸'로 변장한 보살들이 일행을 시험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산노모와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과부와 정혼자를 구하는 세딸로 나오는데 삼장법사와 손오공, 사오정은 이쪽에 한해선 점잖은 편이라 거부하지만 저팔계만 혼자 넘어갑니다. 여기서 정혼자로 세딸 중 한 명만 고르기 힘드니 어머니인 과부에게 아예 세딸을 전부 달라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막판에는 그냥 장모님까지 자길 받아달라고까지 하는 등 개그를 선보이는데요. 세딸이 지은 속옷을 자기가 다 입으면 세딸을 전부 자기 부인으로 달라고 하지만 그것은 페이크. 실제론 밧줄로 꽁꽁 묶인 채 하루종일 나무에 매달리는 벌을 받습니다.
이 우스운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음에 나오는 것은 만수산 오장관의 인삼과 에피소드입니다. 오장관의 주인은 모든 지선들의 비조라는 진원대선으로 삼장법사와는 전생에 친구였다고 하는데, 자기가 없는 동안 삼장 일행이 올것임을 알고 자기 제자들인 청풍과 명월에게 인삼과를 대접하라고 일러둡니다. 대신 제자들은 흉폭하니 경계하라는 충고도 함께요. 여기서 재미난 것은 손오공과 저팔계가 당장은 삼장을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자기들끼린 늙다리 중이라고 부르며 뒷담화하는 모양새를 내기도 한다는 겁니다. 인삼과를 진짜 아기로 오인한 삼장이 그것을 거절하는데 그 형편을 몰래 듣던 저팔계가 손오공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인삼과를 훔치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인삼과는 냄새만 맡아도 삼백 육십년, 먹으면 사만 칠천년 산다는 열매인데 이것을 훔쳐 저팔계와 사오정과 나눠먹은 손오공은 나중에 청풍과 명월이 자신들을 추궁하자 부아가 치밀어 아예 나무를 쓰러뜨리는 짓을 합니다. 그리고 몇번 진원대선한테 붙들려오면서도 자신의 조금 장난스런 술법으로 그들을 곤란케하는데 진원대선이 모든 지선-땅의 신선-들 중 제일이라 여겨지면서도 손오공이 이럴 수 있는 건 손오공이 태을산선-지위가 정해지지 않은 하늘의 신선-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속한 곳이 다른데다 손오공이 대단한 게 사실인 모양. 천계의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사흘 안에 인삼과를 살릴 방도를 찾다가 수성, 복성, 녹성 세 신선이 손오공을 돕기 위해 기한을 늘려달라 부탁하러 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수성은 나중에 비구국 에피소드에 나오는 남극수성일까요? 저팔계의 추태를 다 받아주는 걸로 보니 신선들은 다 대인배인듯.
결국 관음보살이 행차하여 나무를 살리면서 해결이 나고 찾아온 신선들과 관음보살, 삼장일행이 인삼과를 대접받고 진원대선과 손오공이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다만 굉장히 중요한 위치라 설명되는 진원대선의 비중은 딱 여기서 끝이고 이후 서유기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오장관 인삼과 이야기가 끝나면 백호령에서 조금은 시시한 요괴인 백골부인과 만나는데요. 여기선 확실히 삼장과 저팔계가 지나쳤다고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삼장을 잡아먹기 위해 강시 요괴인 백골부인이 여자 - 여자노인- 남자노인으로 변신하면서 접근하고 그때마다 손오공이 때려죽이려 드는데 앞서의 두번은 용케 빠져나간 데다 오히려 손오공이 인간을 죽였다고 삼장에게 타박당합니다.
여기엔 시주받을 기회를 놓쳤다고 배가 고픈 저팔계가 손오공을 원망하여 삼장을 부추긴 탓도 있는데 마지막에 다시 백골부인이 나타나자 손오공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요괴를 죽였단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산신령과 토지신을 불러들인 뒤 요괴를 잡아 죽입니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오공을 파문하고 손오공은 결국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냥꾼들에게 쑥대밭이 된 수렴동을 복구시키지요. 그동안 삼장일행은 저팔계가 시주를 얻으러 갔다가 멋대로 잠들고, 그런 저팔계를 찾으러 사오정까지 떠난 사이 숲속의 불탑을 보고 절이라 생각한 삼장이 요괴소굴로 들어가는 짓을 저지릅니다. 거기에 살던 요괴는 바로 황포요괴.
저팔계와 사오정이 나중에 삼장을 구하러 찾아오지만 힘에서 밀렸는데 그때 황포요괴에게 붙들려 아내로 살던 보상국 공주 백화수가 삼장을 풀어달라고 요괴에게 부탁하면서 삼장에게 몰래 자기를 구해달라는 편지를 부모에게 전해달라고 건내줍니다. 보상국에 도달한 삼장일행은 통행증명서를 받으면서 공주의 편지를 왕에게 전해주고, 왕은 행방불명된 딸이 요괴에게 잡힌 걸 알자 분명 삼장일행이 범상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여 딸의 구출을 부탁합니다. 저팔계가 허세를 부리며 요괴를 잡으러가고 요괴와 싸워서 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오정이 도우러 가는데 황포요괴와 싸우는 와중에 힘에 부치자 저팔계는 똥누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싸움을 사오정에게 떠넘기고 혼자 도망갑니다.
요괴에게 사오정이 붙들리고 한번 풀어준 삼장의 제자들이 다시 찾아온 걸 이상하게 여긴 황포요괴는 분명 공주가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을 거라고 추측, 분노하여 공주의 머리채를 잡고 사오정 앞으로 끌고와 패대기 친 뒤 그를 추궁하며 공주를 죽이려 듭니다. 그때 사오정은 공주가 스승을 구해준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공주가 몰래 편지를 전한 것이 아니라 보상국에서 원래 공주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공주를 찾고 있었고 삼장이 그것을 보고 자신이 만난 공주라는 걸 확인한 뒤 왕의 부탁을 친히 받아 여기에 온 거라고 둘러댑니다. 이 장면이 제가 사오정에게 결정적으로 반하게 된 계기랄까요?
사오정은 보면 자신도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생각하는 배려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문학과지성사판 해설집에 사오정은 자비의 상징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민폐전담 저팔계나 살육에 꺼리낌 없는 손오공과는 다르단 말씀. 읽다보면 여기 보상국 공주 에피소드는 어딘가 폭력남편과 매맞는 아내의 전형을 보는 것도 같다는 느낌인데 수틀려서 공주를 패대기치는 황포요괴가 나중에 미안하다며 잘해주자 맘이 풀리는 공주의 모습을 보자면 말이지요. 소설 막판에는 황포요괴가 잘생긴 부마로 변신하여 보상국 왕에게 인사를 간 다음 술법으로 삼장을 호랑이 요괴처럼 보이게 하고 자신은 귀빈 대접받다가 술이 들어가자 본색이 드러나 옆에서 비파를 키던 궁녀를 산채로 아작아작 씹어먹어 난리를 일으킵니다. 고전 소설이라는 걸 감안해도 상당히 고어한 장면인데 종종 『서유기』에서 이런 묘사가 종종 등장하는 게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궁에서 일어난 그 꼴을 보게 된 백마가 참다못해 궁녀로 변신한 뒤 요괴에게 접근하여 그를 공격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요괴가 던진 촛대에 다리를 다쳐 도망치고 저팔계를 찾아가 자기가 겪은 걸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계속 용이라고 손오공이 이야기를 해줘도 백마가 용이란 걸 인식못하는 저팔계는 다 틀렸으니 '넌 바다로 돌아가고, 난 고로장에 돌아가겠다'는 소리를 해대는데 여기서 귀엽게도 백마가 저팔계의 승복을 물고 보내주지 않으며 손오공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막상 수렴동으로 찾아간 저팔계는 자기가 저지른 짓 때문인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데요. 거기다 수렴동에 익숙해진 손오공의 모습을 보고 데리고가긴 글렀다고 생각하여 돌아가면서 손오공을 향한 악담을 퍼붓자 손오공의 부하들이 그것을 일러바치고 손오공 앞으로 끌려가면서 3권의 막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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