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시작은 우주의 창조부터 시작합니다. 이야기에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싶지만 소설이 나왔을 무렵 옛사람들의 우주관을 어쩌면 엿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요약하여 옮겨봅니다. 『서유기』의 시 부분에서 반고가 우주를 깨뜨려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창세신화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서 하늘과 땅의 운수는 십이만구천육백년을 하나의 '원元'으로 삼고 그것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 해당하는 12간지의 '회會'로 나누는데 이 회는 하나가 일만 팔백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의 큰 운수는 술회가 끝날때쯤에 어두워져 막혀버리고 오천사백년이 지나면 해회의 첫머리에서 어둡고 캄캄한 시대가 도래한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혼돈이라 부르는데 다시 오천 사백년이 지나 자회에 가까워지면 점차 밝은 세상이 열리게 되며 자회에 도달하면 하늘이 열려 가볍고 맑은 기운은 올라가서 해와 달과 별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축회에 도달하면 땅이 견실해지며 축회에서 땅이 열리는데, 여기서 오천 사백년이 흘러 인회가 가까워지면서 만물이 열리며 음양이 합쳐지고 여기서 또 오천 사백년이 흘러 완전히 인회가 되면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서유기 상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금'은 인회의 시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 지역 설명이 나오는데 주인공 손오공의 고향은 동승신주 대륙의 오래국 화과산에 위치한 수렴동입니다. 동승신주 말고 서우하주, 남섬부주, 북구로주란 대륙이 존재하는데 책의 주석에 따르면 이 대륙의 설명은 불교에서 언급되는 네 대륙의 이름을 빌려온 건데 현재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곳 중국은 남섬부주에 해당된다고 나옵니다. 소설 1화에선 화과산의 신성한 바위가 저절로 신선의 태를 갖추면서 돌알을 낳았고 그것이 바람에 깎이어 원숭이 형태가 된 뒤 그것이 손오공으로 탄생합니다. 이후 손오공은 이름도 없이 원숭이 무리에서 살다가 폭포 속의 수렴동을 찾은 덕에 원숭이 왕으로 추대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 생겨나게 되고, 신하 원숭이의 말을 따라 남섬부주의 신선을 만나 불로장생의 비법을 터득하려 합니다.
거기서 다양한 인간을 만나지만 인간들은 한낮 욕심에 휘둘려서 살 뿐이란 설명이 나오는데 소설의 주제가 넌지시 비춰지는 듯도 해요. 이후 손오공은 우연히 한 나뭇꾼을 통해 수보리조사의 거처를 알고 그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됩니다. 여기서도 우스운 말장난이 나오는데 수보리조사가 너의 '성'이 무엇이냐는 말에 손오공 자신은 성깔같은 것은 없다고 대답하지요. 수보리조사는 그에게 손이란 성씨와 오공이란 법명, 그리고 다양한 술법과 그의 미래에 대한 예언까지 점쳐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술법을 가르쳐주었음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데, 수보리조사는 손오공이 엄청나게 말썽을 피울 걸 알면서도 또 엄청난 업적을 이루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애정으로 가르친 듯.
술법을 터득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공은 자신의 일족을 괴롭힌 혼세마왕이란 요괴를 쓰러뜨리고 다시 자신의 나라를 다스립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깽판이 시작되는데 용왕국에 가서 무기와 갑옷을 얻느라 한차례 깽판, 백성들을 단련시킨다고 오래국 무기를 모조리 훔쳐오는 깽판, 저승에 불려갔을 때 한번 더 깽판을 쳐서 원숭이들의 명부를 훼손시키는 등의 일을 벌여 옥황상제에게 상소문이 올라가게 됩니다. 더불어 다른 육대마왕과 의형제를 맺는데 이들은 큰 비중은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그를 토벌하려 하나 태백금성이 일단 어르는 방법을 쓰자는 이유로 그를 천궁에 불러 필마온 관직을 맡깁니다.
이 필마온은 하늘나라의 말을 관리하는 직업인데 손오공은 재주가 좋아서 의외로 이 직책을 잘 해냅니다. 재밌게도 여기에 등장하는 하늘나라 말 중에는 관우가 타던 적토마도 있더군요. 하지만 필마온이 낮은 말단이란 걸 안 손오공은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간 뒤 제천대성을 칭하고 멋대로 하계로 내려간 손오공을 잡기 위해 옥황상제는 탁탑이천왕을 위시한 토벌군을 보내지만 오히려 역으로 공격당하지요. 결국 타협으로 하늘나라 측에서 제천대성이란 관직을 만들어 손오공을 임명하여 달래는데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간 손오공이 반도 복숭아와 천계의 술, 태상노군의 단약을 훔쳐먹는 깽판을 또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하여 이차토벌이 또 시작되는데, 탁탑이천왕의 둘째아들 목차행자가 지원을 오지만 그 역시 밀리게 되자 관음보살의 추천대로 옥황상제의 조카 현성 이랑신의 지원을 받아 손오공을 핀치로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그를 태상노군이 던진 금강탁으로 생포하여 팔괘로에 넣지요. 그곳에 불을 쐬면서 손오공의 눈은 그의 외모에서 가장 큰 특징인 불 같은 눈에 금색 눈동자인 화안금정[火眼金睛]으로 변하게 돼요. 팔괘로에 충분히 구워졌다 싶어 태상노군이 문을 열자마자 뛰쳐나온 손오공이 또 다시 깽판을 치자, 이번에는 영취산의 여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다들 아시는 바대로 부처님 손안에 손오공의 형태로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그리고 오백년이 지나 석가여래는 남섬부주의 사람들이 고통과 욕망 속에 사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진경을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 진경을 가지러 올 인물을 선택하기 위해 관음보살과 제자 목차가 금란가사와 구환석장, 긴고아 고리 셋 보물을 받고 길을 떠납니다. 그 와중에 유사하의 요괴 사오정을 만나 그에게 이름과 임무를 주고, 역시 복릉산의 저팔계를 만나 그에게 오능이란 이름과 임무를 줍니다. 그리고 서해용왕 오윤의 아들 옥룡이 처형당하는 것을 막고 그에게도 임무를 주고 마지막으로 오행산에 깔린 손오공에게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는 것을 건의, 손오공이 받아들입니다. 중간에 외전격으로 들어간 부록회에선 현장삼장의 비극적인 출생 - 아버지가 도적에게 죽임당하고 어머니는 납치당한 뒤 자신은 버려져 승려가 되는데 어머니가 남긴 혈서를 통해 전말을 알게 된 삼장이 복수를 해내는-이 담겨 있습니다.
1권의 후반 9회와 10회에선 용왕이 점쟁이의 예언을 빗나가려고 술수를 썼다가 공무 위반죄로 당태종의 신하 위징에게 참수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자 당태종에게 목숨을 살려달라 요청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당태종의 실수로 위징만 붙들어두면 될 거라는 생각에 결국 그것을 막지 못했고 꿈속에서 용왕은 참수당하여 그 원령이 당태종을 괴롭히고 결국 당태종은 쇠약해져 숨을 거두면서 당태종 저승행이 시작되는데 당태종 저승행이 그나마 볼만한 것은 여기서 묘사되는 지옥의 묘사뿐이랄까요. 당태종이 자신이 죽인 원령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금전과 곡식을 주기로 했는데 당태종이 빈털터리인지라 줄 게 없어서 상량이란 덕많은 인간의 저승창고에서 꾸기로 하는 부분에서 끝납니다.
역자분의 서문에 의하면 이 서유기 번역 연구회 측의 번역본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말에 최대한 맞게 번역하여 예를 들면 소설 내에 자주 언급되는 미후왕이라는 용어는 '멋진 원숭이왕'이란 식으로 번역되었고 어미가 "-했지요"나 "-했어요"로 끝나는 것은 원문의 서술체에 가깝게 살리기 위해서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주석이 굉장히 자세한 편인데 한회가 끝날 때마다 주석이 있고 또 책의 맨 뒤에 어려운 용어 설명과 등장인물 소개가 실려있습니다. 또 삽화는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각 인물을 묘사한 고화들이 앞부분에 많이 실려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현장삼장의 천축으로 떠난 실제 노선과 귀국노선이 표시된 지도가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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