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드디어 마지막권입니다. 이번 10권에는 부처님 흉내를 내는 세 코뿔소 요괴 벽한/벽서/벽진대왕을 하늘의 이십팔수 별자리 중 사목금성의 도움을 받아 아작내는 이야기나, 천축국 공주로 위장한 옥토끼 요괴와 삼장법사가 혼인을 치루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여기 10권에서 삼장법사는 마흔 다섯이라고 나오는데다 공주는 스무살에 되었다고 하니 나이차이가 너무 심해서 조금 놀랐다고 할까요? 어쨌든 저 혼인 이야기는 요괴의 함정이라 파토나긴 합니다만... 그나마 10권이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삼장의 태를 벗기 전에 겪는 마지막 고난인 구원외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짜증이 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건이 어찌 잘 풀려서 망정이지 캐릭터들이 현실적인 악당들이라 분노를 일으킨다는 게 이유였죠.
참고로 사목금성(四木禽星) 같은 경우 사목금성의 한자에서 지금까지 한자를 金 아니면 今으로 오인했었는데 생각보니 목성자리인 별들이 金일리 없다는 게 떠올랐는데다 책에서 정확한 한자를 보니 정확한 표기는 禽 - 짐승이란 뜻이란 걸 알았는데 그야말로 이십팔수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한자였습니다.
이번 『서유기』 10권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 완결편이라서가 아니라, 이 책의 뒷편에 실린 부록이 서유기 팬으로써 매우 즐겁게 읽을 만한 자료가 많이 실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10권을 처음 리뷰할 때도 이 책의 두께가 다른 권들보다 두배는 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부록의 양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서유기』 10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작품 해설 '『서유기』의 탄생과 변천과정'은 책의 329페이지에서부터 480페이지라는 꽤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20여장에 해당되는 분량은 역사적 인물이 현장 삼장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서유기와 관련된 해설서가 우리나라에 많이 없다고 느끼는 만큼 이번 권에 실린 해설집은 팬으로써 여러모로 중요한 자료라고 할까요. 해설본의 첫부분에는 서유기가 속하는 소설의 장르 '신마소설'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며, 서유기 소설의 특징 등장인물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신불이나 요괴들이 갖는 개성과 인간미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간략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서유기의 탄생과정에 대해 살펴보는데 서유기가 제대로 된 소설로써 탄생하게 된 명나라 말기의 시대적인 혼란상과 저자로 추정되는 오승은의 개인적 삶의 파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유기』의 모티브는 역사적 인물인 현장의 천축 여행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장이 직접 구술하고 제자들이 집필한 『대당서역기』이며, 그 제자들이 스승의 일생을 전기로 기록한 『대당 자은사 삼장법사전』은 소설 서유기와는 크게 다른 내용들이지만 어느 정도 모티브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으레 옛시대의 소설이 그러하듯 서유기도 삼국지연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데 책에서 첫 번째 단계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송나라 시기 이야기꾼들의 대본으로 현재 남아있는 것이 『대당 삼장 취경시화』. 『대당삼장 취경시화』의 저술시기는 북송 인종때부터 남송 고종 연간, 간행된 시기는 남송 말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삼장을 진주인공으로 그를 보조하는 캐릭터로 후에 손오공으로 변천한 흰 옷 입은 후[猴]행자와 사화상의 초기형태인 심사신[深沙神]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초기판본에는 저팔계의 모습은 비추지도 않는다고요. 그리고 부수적으로 탁탑이천왕의 모델이 된 대범천왕의 모습도 그려진다고 합니다. 둘째 단계는 『대당 삼장 취경시화』이후 1백회본 서유기가 나타나기 전까지 원나라 중엽부터 명나라 전기에 이르기까지 약 2백여년 시기에 희곡인데, 이 시기에 어느 정도 산문소설화 된 과도기적 서유기가 등장하였으며,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 가지 당대 희곡 자료 중에서 그 파편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역관 교본 『박통사 언해』에 인용된 글이라고 합니다. 『박통사 언해』에 실린 대화문 중 『당삼장 서유기』의 제목과 줄거리가 간략하게 언급이 되며, 여기서 비로소 저팔계의 초기 모델인 주[朱]팔계가 등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팔계의 성이 변화한 이유는 명나라때의 황실이 주씨라서 황제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같은 중국 발음 '저'로 변했다는 설명이 나중에 나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명나라 가정제 전기에서부터 명나라 말기인 100여년 시점에 나타난 명나라 1백회본 소설 『서유기』로 출간된 판본이 매우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서유기는 명나라 만력 때에 등장한 축약본 서유기 두 종으로 양지화가 펴낸 40화짜리 『신계 삼장 출신전전』과 주정신이 엮은 『정계전상 당삼장 서유전(당삼장 서유석액전)』 10권 67회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읽는 서유기의 바탕이 된 100회본 짜리도 종류가 많은데 만력 15년 화양동천 주인이 교열하고 금릉 세덕당에서 출판한 『신각출상 관판대자 서유기』가 있고, 천계 숭정제 때 이탁오 선생이 평점을 붙여 판각한 『비평 서유기』인데 이 『비평 서유기』는 그 사료가 중국에서 전질 2부가 발견되고 일본의 내각문고 및 오쿠노 신타로가 원본을 한 벌씩 소장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다나카 겐지와 아사노 도서관에 복각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것은 융경 전후 판각된 『당승 서유기』, 네 번째 것은 만력 31년 간행된 청백당 양민재 판본 『정휴경 본 전상 서유기』가 있다고 합니다.
청나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1백회본 『서유기』들이 다양하게 판각되는데 이 청나라 시기의 100회본 『서유기』는 아무래도 수정과 보완이 잇따라서인지 문장과 질이 명나라 시기 것보다 월등한 편이라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강희제 3~4년에 황주성이 주해를 붙인 『서유증도서』가 있으며, 강희 35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여러차례 번각되어 널리 유포된 진사빈의 『서유진전』, 가경 15년에 초판이 나온 유일명의 『서유원지』, 도광 19년에 판각된 장함장의 『서유정지』 광서 17년에 간행된 함정자의 『서유기평주』등이 있으며, 이들 판본은 비평이나 주해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빼면 그 본문 자체는 기본적으로 『서유증도서』를 답습한다고 합니다. 다만 건륭 14년에 초판을 찍어낸 장서신의 『신설 서유기 도상』 한종류만은 명대 세덕당 본과 이탁오 평본을 닮고 있다고요.
참고로 밝히길 이 서유기 판본들의 특성과 차이점을 살피면서 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는 판본을 취사선택하되 명나라 때의 세덕당 본을 중심으로 번역하고 제9회부터 11회까지의 본문은 청나라때의 판본 『신설 서유기 도상』과 『서유증도서』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서유기』 판본문제 다음으로 소설이 갖는 문학적인 특징을 살피고 있는데 현대인들이 읽어도 재밌을 만큼 『서유기』는 낭만적인 상상력과 유머러스함,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풍자미와 오래된 신화에서 이야기를 끌어오면서 갖는 신비로움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교를 숭상하여 불교를 탄압하는 황제나 토지신이나 사람들에게 제물을 갈취하는 요괴들의 모습 등은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각각의 주인공들이 갖는 개성, 예를 들어 삼장법사는 위대한 승려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개성을 불어넣어 선량은 하지만 현실성 없이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쉽게 겁에 질리는 문약한 이미지를 넣어 당시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단순한 종교적 화신의 이미지를 벗어나 생동감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서유기』의 진주인공 손오공은 당시 세태를 바라본 오승은이 바라던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성격을 원숭이 요정으로 드러낸 것이긴 하지만, 그 등장과정에서는 복잡한 역사적 변천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일단 오공의 모티브가 된 신화속 인물이 중국 신화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 요정 무지기이냐, 아니면 인도에서 전래된 원숭이신 하누만이냐에서부터 그 성격과 이미지의 변천과정 - 초기 거칠고 음탕하며 술법으로 복속시켜야 하는 원숭이의 성미에서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우면서 자유분방한 성격의 영웅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과도기적 이야기를 통해 중국 역사 속의 불교와 도교 사이에 알력이 작용했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요.
『서유기』의 특이점 중 하나로 저팔계의 등장인데 초기 서유기의 모티브인 『대당 삼장 취경시화』에서는 저팔계의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으며 이것으로 후대에 이야기 속에서 저팔계가 주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래 중국문화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돼지 상징이나 이야기가 점차 서유기 속으로 들어갔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돼지가 하수를 청소하는 물의 짐승으로 여겨진 것처럼 저팔계가 수군 장수로 등장하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추태에 식탐+여색을 밝히고 사고를 치는 캐릭터이긴 하나 서유기하면 저팔계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서유기의 골계미를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저팔계이기 때문이며 사고뭉치이긴 하지만 그 낙관성이나 식탐, 좋은 집에서 잔뜩 먹고 편하게 자고 마누라와 알콩달콩 사는 것을 좋게 치는 저팔계는 바로 당시대의 농민들이 가졌던 이상향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고요.
반면 사오정은 저팔계보다 이르게 그 초기 이미지가 등장하였으면서도 저팔계보다 비중이 적고 캐릭터가 희미한데 농민의 이미지와 사상을 적극 담은 저팔계에 비하면 그 개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오정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이 바라던 모습을 담아낸 것일 수도 있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사오정은 그야말로 속세의 죄를 덜기 위해 고행하는 승려의 모습에 가까우며 제어가 어려운 손오공과 사고뭉치인 저팔계에 비하면 가장 일반적인 구도자의 모습에 가깝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보면 사오정은 다른 두 제자에 비하면 살생을 저지른 경우가 거의 없으며 딱 한번 살생은 저지른 상황은 육이미후 에피소드 당시 자신의 모습으로 분한 원숭이 정령을 보고 분노하여 그를 때려죽인 일 정도만 존재합니다. 사오정이 황포요괴의 부인 백화수 공주를 살린 것이나 낙태천의 여의진선을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고 하는 등 그가 활약하는 부분은 보통 자비로움을 드러내는 부분이 많은데요.
보면 삼장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분열하기 쉬운 세 사람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특성을 오행에 비유했을 때 중도를 지키는 흙[土]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오정이 등장하는 유사하는 역사적 인물 현장삼장이 건너야했던 사나운 모래폭풍이 일던 사막이 모델이 되었던 것처럼 물의 정령이면서 토[土]를 상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부처로 봉해지면서 정단사자보다 윗자리인 금신나한에 둘째 팔계를 제치고 봉해진 이유는 실제로는 그가 둘째 제자였음을 파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요.
그 외에도 책에선 부록은 『서유기』의 원저자가 오승은이냐 아니면 다른 인물이냐에 관한 학자들의 쟁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토론은 현재진행형 같습니다. 재미나게도 서유기 집단누적형 소설이라는 주장을 대변하는 자료 중 일부로 현재 우리가 읽는 서유기에 남아있는 옛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제가 읽으면서 의아했던 부분 -사타동 마왕 대붕이나 육이미후가 과거 손오공과 의형제를 맺은 대붕마왕이나 미후왕이랑 같은 존재가 맞느냐는 점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변천하면서 상당수 잘려나가거나 변화한 탓인지 우마왕을 제외하면 친분을 과시하는 요괴가 없지만 이 주장대로라면 사타동 사타왕[사자마왕], 대붕마왕, 육이미후는 과도기적 서유기 이야기에서 원래는 손오공의 의형제인 육대마왕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육대마왕과 후에 등장하는 요괴의 이름이 같은 이유는 여기서 설명할 수 있지만 세덕당본으로 소설을 이루면서 이런 부분이 없어져서 친분을 과시하는 부분도 없고 손오공과 관련없는 요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책에 실린 현장삼장의 일대기는 짧은 페이지지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고 역사적 인물 현장삼장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그의 일대기에서 비롯된 『서유기』의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흥미로웠습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인 것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현대에도 외국으로 멀리 떠나는 것은 결단이 어렵고 과정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만 이것을 1300여년 전 단지 진리를 찾기 위해 떠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것. 이런 이야기를 당시 사람들이 결코 그냥 두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테고 그것이 『서유기』라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탄생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서유기』 2권 감상문 (0) | 2024.11.24 |
---|---|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서유기』 1권 감상문 (0) | 2024.11.23 |
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9권 감상문 (0) | 2024.11.20 |
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8권 감상문 (0) | 2024.11.19 |
『만화로 보는 진본 서유기』 12권 감상문 (4)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