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연구회의 『서유기』 2권입니다. 『서유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2권의 서두를 담당하는 당태종 저승행은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태종의 저승행은 완전히 당태종 찬양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 손오공 일행의 모험담하고는 그다지 상관은 없어서 별로 끌릴 만한 이야기가 없다시피 하거든요. 거기다 묘사되는 수준이 다시는 없을 위대하고 성자같은 황제처럼 나오는데 혹시 중국인들 입장에서 대단한 황제인 것은 맞겠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침략한 나라의 황제인데 딱히 호의적일 일도 없는 게 사실이라서요. 어쨌든 당태종과 의형제를 맺은 현장 삼장이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데요. 문학과지성사판 『서유기』의 마지막권 부록에 보면 현장삼장이 살아있을 무렵에는 승려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었고 현장 삼장은 법으로 금지함에도 경을 얻기 위해 굉장히 대담한 도전을 감행한 거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실제로 의형제를 맺은 것도 다른 나라의 왕이라고 언급됩니다.
즉, 삼장법사가 당태종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것은 일종의 주인공 보정 겸 소설적 허용이라고 봐야겠지요. 주인공 보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소설 내에서 현장 삼장이 다른 인간, 말하자면 제자를 제외한 평범한 사람들이 삼장법사와 함께 요괴에게 잡혀가면 요괴들은 삼장은 안 건들이고 다른 사람부터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삼장법사가 고귀한 인간이라 뭇요괴들이 못건든다는 설정이지만 솔직히 창작물에서 흔히 보이는 보정치고는 꽤나 불쾌한 요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상황이 주인공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그저 운좋았다는 묘사라면 상관없지만 주인공이 원인이 되어 피바람이 부는데 정작 피해는 주변 엑스트라들이 보고 주인공은 무사하게 되는 불공정한 법칙 말이죠.
어쨌거나 세기를 앞서간 민폐캐릭터 삼장법사는 처음 하찮은 요괴들에게 시종 두명을 잡아먹히고 태백금성이 분한 노인에게 구원받은 뒤 진이 다빠진 그를 진산태보란 별명을 가진 사냥꾼 유백흠이 구해주고 대접합니다. 그래도 딱히 이때까진 징징거림이 보이지 않는데 손오공과 직접적으로 얽히게 되면서 민폐샌님 기질에 불이 붙습니다. 일단 도적들을 때려눕히는 것 때문에 야단맞은 손오공이 삼장을 버려두고 가는 것은 손오공이 지나친 것이 맞겠지만, 후에 옥룡과 맞닥뜨렸을 때 옥룡이 말을 삼켜버리자 말을 구해야 하는데도 가지말라고 징징거리며 손오공을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때 삼장을 호위하는 수호신령 육정육갑과 오방게체, 사치공조와 열 여덟의 호위 가람들이 삼장을 안정시키고 손오공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니까 총 천상과 불교의 서른 아홉의 신령들이 삼장을 지켜줌에도 불구하고 삼장은 수시로 요괴들에게 붙들려간다는 이야기에요.
이 부분은 제가 2010년도 드라마 『서유기』를 보기도 한 지라 비교도 하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선 손오공이 삼장을 버리고 가다가 관음보살을 만나 맘을 고쳐먹고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된 반면, 원전에서는 용궁에 놀러갔다가 장량의 일화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맘을 고쳐먹은 손오공이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나옵니다. 중간에 관세음보살과 만나긴 합니다만 이미 맘을 고쳐먹은 뒤에 일이고, 관세음보살은 긴고아 테를 삼장에게 건내주고 오는 길이라 만난 셈이었죠. 옥룡과 싸우는 것도 원전에 충실한 편인데 용이 인간화하는 것은 드라마쪽 설정이 아니라 원전에서도 관세음보살이 타이르러 왔을 때 어린 용이 인간으로 변신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소설에서는 옥룡이 말로 변했음에도 안장과 고삐가 없어서 못탄다고 삼장법사가 징징거리는 장면이 있지요. 나중에 토지신들이 안장과 고삐를 마련해주긴 합니다만 답답합니다.
그리고 관음선원이란 절에서 승려들이 금란가사를 도둑질하는 에피소드에서도 개그씬이 많이 나오는데 손오공이 절의 종을 쳐대면서 시끄럽게 구는 이야기도 원작에서 묘사된 부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끔 장수한 인간들이 나올 경우 손오공이 자기 손자뻘이라는 둥 하면서 비웃는데, 금란가사를 도둑질하게 되는 주지승이 손오공에게 나이를 묻자 새침하게 말할 수 없다고 끊어버리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아마 추측하기로 손오공의 나이는 삼백살이 넘었을 무렵 저승에서 깽판을 치고, 그 후에 천계로 불려갔다가 전쟁을 벌인 뒤 오행산에 오백년 동안 갇힌 걸로 봐서 800살은 당연히 넘고 900살은 조금 넘은 나이일 거라고 봐요. 거기다 금란가사를 도둑질하는 승려들이 자신들이 자는 선방에 불을 지르자 광목천왕을 찾아가 불을 피하는 덮개를 빌린 뒤 오히려 불을 더 퍼뜨리는 짓을 하려하자, 광목천왕이 자기 편만 돌보는 거냐고 하는 장면도 압권인데 왠지 이런 부분에선 손오공이 가진 트릭스터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절의 불을 끄러왔다가 금란가사를 훔쳐가는 것은 흑풍산 흑풍동의 곰요괴인데 이름은 흑대왕 웅비라고 나옵니다. 이 놈은 손오공한테 밀리자 자꾸 도망을 치는 바람에 빡친 손오공이 관음보살에게 애처럼 생떼를 써서 결국 관음보살이 제압하러 나오게 되지요. 나쁜 요괴가 아니란 것을 알아챈 관음보살이 흑풍요괴를 산지기로 끌고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흑풍산 에피소드가 끝나면 고로장에서 저팔계를 둘째 제자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개그씬은 빠지지 않아서 저팔계의 장인이 저팔계를 쫓아내기 위해 도사를 찾으러 보낸 하인 꼬마를 손오공이 골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을 이름을 묻기 위해 바쁜 꼬마를 잡고 꼬마가 투덜거려도 놔주지 않는 것으로요. 사연을 알게 된 손오공이 요괴퇴치에 나서는데 저팔계는 손오공이 제천대성이라는 것을 알고 겁먹고 도망갔다가 당나라 승려를 모시고 간다는 말에 자신의 임무를 밝히며 제자로 받아들여주길 간청합니다.
저팔계의 법명은 오능인데 팔계란 이름은 저팔계에게 절에서 금지하는 음식 여덟가지 먹지 말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스스로 붙인 이름은 저강렵이고요. 게다가 떠나는 와중에도 만약 임무완수 못하고 환속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겠단 푼수같은 소리를 하면서 떠납니다. 고로장을 떠난 뒤 티베트 경계의 오사장이란 곳에서 오소선사를 만나는데 여기 본에서는 오소선사의 이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까마귀가 변한 선인이라는 것은 암시해줍니다. 거기다 본래 저팔계를 제자로 들이려고 했다는 사정까지 나오지요. 여기서 오소선사는 일행의 앞일을 예언하면서 조만간 사오정과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삼장에게 요괴에게서 몸을 지킬 수 있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전수해주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드디어 황풍령 에피소드인데요. 작중에서 손오공이 벼락신같은 외모라 사람들이 놀란다는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주석에 의하면 벼락신은 주걱턱의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고 설명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황풍요괴의 비중은 아직 크게 없고 황풍요괴의 부하인 호선봉(호랑이선봉)이 도마뱀꼬리처럼 자기 가죽을 남겨두는 형식으로 눈속임한 뒤 삼장법사를 납치해갑니다. 거기다가 삼장을 납치한 이유도 황풍요괴 황풍대왕에 대한 충성심때문이라 좀 놀랐는데, 황풍요괴가 담비고 호선봉은 호랑이라 미묘한 느낌이 납니다. 안타깝게도 황풍대왕은 애가 충성심을 보였는데도 손오공이 본거지까지 찾아와 난리치자 괜한 짓을 했다는 투로 호선봉을 타박하기까지 하지요. 결국 호선봉이 다시 싸움에 나서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이기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이 그꼴을 지켜본 저팔계가 중간에 나서서 쇠스랑으로 호선봉을 끔살시킵니다. 담비의 부하에, 원숭이와 돼지에게 졌으니 여러모로 호랑이의 굴욕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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