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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9권 감상문

by 01사금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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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권인 8권이 지용부인 에피소드 초반 도입부 부분에서 끝나서 이제 9권 초반부터 에피소드의 한창 재미난 부분들로 시작하는데요. 지용부인 에피소드는 다른 여자 요괴들 이야기에 비하면 분량이 총4회로 긴 편입니다. 9권에 실린 에피소드는 전반적으로 소소하다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다른 권에 비하며 요괴 이야기가 적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멸법국 에피소드나 봉화군 에피소드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이야기인데 마치 느낌이 쉬어가는 에피소드가 한 두개가 필요하여 집어넣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멸법국 에피소드 이후에는 등장하는 남산대왕 에피소드에 요괴가 등장하긴 하지만 에피소드를 접하는 느낌이 이미 예전에 써먹었던 에피소드를 혼합시킨 느낌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삼장을 잡아먹기위해 납치한다는 것은 늘 있던 일이지만 요괴와 만나기 전 손오공이 저팔계를 골리는 것은 금각은각대왕 에피소드나 사타동 에피소드에서도 나온 바 있고, 요괴들이 손오공의 정체를 알고 전전긍긍하는 것은 제법 흔한 패턴이며-일단 대장인 요괴가 이렇게 초반에 벌벌 떨면 매력이 반감되기 마련이지요- 일행을 떨어뜨리기 위해 가짜를 대동하거나 하는 것은 바로 초반 에피소드인 지용부인이 써먹었던 방식이지요. 그리고 일행을 속이기 위해 삼장이 죽었다는 속임수를 쓰는 것도 이미 8권 사타동 에피소드에서 한번 써먹었던 방식인데 남산대왕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이야기도 이미 어딘가에서 한번 쯤 본 것들을 따온 느낌이라 재미가 적어진다고 할까요.

보면 전체적으로 9권 요괴 이야기가 그런 느낌인데 9권의 중심축이 될만하다 싶은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배치된 옥화현 에피소드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의외로 복잡한 구성을 띄고 있으나 살펴보면 우마왕이 등장했던 화염산 이야기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구석이 있습니다. 일단 주축이 되는 아홉머리 사자 구령원성 같은 경우는 태을구고천존의 말대로 '오랫동안 수행을 쌓아 득도한 진령이고 한번 소리치면 위로는 삼성을 놀라게 하고 아래로는 구천지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성한 동물이며 일단 손오공 일행을 붙잡아 두고도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보면 그 실력이 손오공과 비슷하거나 위면 위지, 아래는 아니라고 판단이 됩니다.

일단 에피소드의 구성과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화염산 > 옥화현순으로 구분)

1.

화염산 : 땅을 뜨겁게 달구는 화염산 부근에 도달한 삼장일행은 그 지역의 주민들과 토지신으로부터 불씨를 꺼뜨리고 지나가기 위해선 파초동 여자요괴 나찰녀의 파초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찰녀를 찾아갑니다. 나찰녀는 파초선을 갖고 있지만 오공이 자신의 아들 홍해아를 죽였다고 오해하여 보물을 건네주지 않고 오히려 파초선을 이용해 손오공을 소수미 산으로 날려버립니다.

옥화현 : 천축국 옥화현 왕궁에 도착한 일행은 요괴로 오해받아 왕자들의 공격을 받지만 이내 왕자들이 오공 일행의 법력에 굴복하여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고 그들이 쓸 무기를 본따기 위해 세 무기 여의봉, 쇠스랑, 항요보장을 대장간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밤중에 보물의 기운을 느낀 표두산 호구동의 황사요괴가 그것을 훔쳐갑니다.

* 참고로 파초선과 일행의 세 무기는 보배이면서 동시에 무기로 쓰이기도 합니다. 무기이자 보물인 물건들이 사건을 제공하는 계기가 됩니다.

2.

화염산 : 소수미산에서 정풍단을 얻은 손오공은 다시 돌아와 나찰녀를 위협하고 작은 벌레로 변신하여 나찰녀의 뱃속에 들어가 난동을 피운 뒤 파초선을 빼앗지만 가짜였습니다. 진짜를 얻기 위해서 나찰녀의 남편 우마왕을 찾아가보라는 토지신의 말에 손오공은 옥면공주와 재혼하여 살고 있는 우마왕을 찾아가지만 우마왕은 홍해아의 일과 둘째 부인 옥면공주를 손오공이 위협했다는 이유로 싸우게 됩니다. 결국 손오공은 우마왕의 협력을 얻지 못하자 우마왕으로 변신하여 나찰녀를 속인 뒤 파초선을 빼앗습니다.

옥화현 : 왕실 대장간에 맡긴 무기가 사라지자 손오공은 요괴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여 왕자들에게 요괴가 사는 곳을 물어봅니다. 요괴가 사는 곳을 찾아간 뒤 거기서 무기를 보여주는 연회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엿듣고 자신과 저팔계를 졸개 요괴로 변신시키고 사오정을 연회에 쓸 돼지를 파는 장사꾼으로 변신시켜 요괴소굴로 잠입합니다. 그리고 부하인 척 하면서 연회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무기를 되찾고 요괴 황사대왕을 내쫓게 됩니다. 쫓겨난 황사대왕은 도움을 얻기 위해 할아버지 구령원성을 찾아갑니다.

* 무기를 얻기까지의 방식 -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에게서 정보를 얻고 눈속임을 위해 요괴와 가까운 사람으로 변장하는 방식이 닮았습니다. 다만 화염산에서는 상대방이 소유한 무기를 훔치기 위해서 변신을 했고, 옥화현에서는 자신들의 무기를 되찾기 위해 변신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력자를 찾아가는 것도 두 에피소드에서 반대로 나타납니다. [손오공>우마왕, 황사대왕>구령원성]

3.

화염산 : 우마왕은 자신의 아들과 관련된 일, 옥면공주가 모욕당한 일, 나찰녀가 굴욕당하고 보물을 빼앗긴 것에 복수하기 위해 손오공과 싸우게 됩니다. 우마왕 덕에 파초선을 되찾은 나찰녀가 싸움에서 빠지고 옥면공주는 저팔계 손에서 죽임당합니다. 손오공과 우마왕의 싸움이 결판이 나지 않자 여러 신들이 싸움에 가담합니다. 싸움 와중에 우마왕은 자신의 본모습인  거대한 하얀소의 모습을 드러내어 손오공을 몰아붙입니다.

옥화현 : 구두사자 구령원성은 손자 황사대왕이 설욕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른 손자인 사자요괴들과 함께 옥화현을 침공합니다. 황사대왕은 손오공 손에 죽임당하면서 비중이 사라지고, 손자의 복수를 위해 구령원성은 자신의 본모습인 아홉머리 사자 형태로 변해 각각의 입으로 손오공을 비롯하여 삼장과 사오정, 저팔계와 옥화현 왕과 왕자들을 모조리 납치하고 손자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오공을 고문합니다.

* 이 두 에피소드에선 싸움의 발단을 제공한 인물이 사정상 빠지고 그보다 더 강한 인물이 손오공을 몰아붙입니다. 리더 격인 두 요괴 우마왕과 구령원성은 다른 요괴들처럼 삼장을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친지가 모욕당한 것에 대한 복수로 싸움을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다른 공통점으론 싸움 와중에 자신의 본체를 드러낸다는 점도 있고요. 다만 여기서 싸움에 동원한 인물의 숫자는 화염산에선 손오공 측이 더 많은 반면, 옥화현에선 구령원성이 더 많습니다.

4.

화염산 : 여러 신들과 나타태자의 도움으로 우마왕을 제압하고 우마왕은 불가에 귀의하겠다고 맹세한 뒤  나타태자 일행에게 끌려갑니다. 나찰녀로부터 파초선을 얻은 그들은 화염산의 불씨를 완벽하게 꺼뜨리고 파초선을 나찰녀에게 돌려준 뒤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나찰녀는 후에 수련을 하여 정과를 얻게 됩니다.

옥화현 : 요괴 소굴에서 겨우 빠져나온 오공은 토지신으로부터 요괴의 주인이 동극묘암궁의 태을구고천존이라는 사실을 듣고 그를 찾아가고 결국 직접 주인이 나타나자 요괴는 굴복하여 끌려갑니다. 왕자들의 무기도 완성되고 오공 일행에게 법력을 전수받아 월등한 실력을 갖추게 되자 만족한 일행은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 적대하는 측인 우마왕과 구령원성은 각각 급이 높은 신들이 제압하여 끌고 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우마왕은 본디 하계에서 지내던 요괴고 구령원성은 주인 몰래 도망친 천상의 짐승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말에서 나찰녀에게 보물을 돌려준 것이나 세 무기를 본뜬 왕자들의 무기가 완성되면서 본래 보물들이 제 자리를 찾게 됩니다. 화염산 부근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면서 부근 지역이 평온해진 것과 후에 나찰녀가 정과를 얻은 것이나 옥화현 세 왕자들이 무예를 높여 나라 안팎을 안정시키게 되는 등 부수적으로 선의의 결과를 낳은 점도 비슷합니다.

전체 에피소드에서 우마왕과 구령원성의 등장분량은 총2회인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해서 『서유기』도 드디어 9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한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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