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8권 감상문입니다. 8권은 주자국 이야기의 결말 부분부터 시작하는데 자금령을 시녀로 변장하여 가짜와 바꿔치기한 손오공이 새태세를 불러 도발합니다. 방울을 빼앗을 때 손오공이 털을 빈대나 이로 변화시켜 요괴의 몸에 뿌린 다음 요괴가 벌레를 잡기 위해 보물을 내려놓은 사이에 보물을 훔치는데 이 방법은 꽤나 유용하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 독각시 대왕 편에서는 오히려 더 꼼꼼하게 보물을 챙기는 바람에 실패한 전적이 있지요. 여기서 뿜기는 것은 자신의 몸에 빈대가 드글드글한 것을 금성궁한테 들키고 창피해하는 요괴대왕의 모습이랄까요. 자양진인이 겁탈을 방지하기 위해 가시가 돋는 옷을 금성궁한테 입히는 바람에 손도 못대는 심정을 소설에선 매우 불쌍하게 그리고 있더라고요. 보면 요괴라고 해서 사랑의 감정이라던가 이런 걸 모르는건 아닌데 하는 짓은 순 약탈혼들이니...
이 다음편은 바로 반사동 거미요괴에게 삼장이 붙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그동안 제자들한테 신세를 졌으니 민가도 있겠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삼장이 자기가 시주를 가겠다고 나서다가 거미요괴들한테 붙들리는데 여기서 또 토지신이 곤욕을 치뤄요. 보통 토지신이나 산신령같은 경우 손오공의 등장을 알고 자기가 알아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손오공이 주문을 외워 그들을 불러들이기도 하는데 여기 반사령 반사동의 토지신은 손오공이 주문을 외자 연자방아간 물레돌리듯 데굴데굴 구르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신들이라도 그 생활방식은 인간과는 다르지 않은지 토지신도 아내가 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손오공의 능력이 넘사벽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반사동의 거미요괴가 처참하게 죽긴 해도 원래 그들이 이용하던 탁구천의 온천은 칠선고라는 하늘의 선녀들이 애용하는 것을 빼앗은 거라는 언급이 있는데요. 일곱선녀들이 싸우지도 않고 온천을 넘겨줬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런데 약간 이상한 것이 처음엔 요괴들의 내력을 잘 모른다던 토지신이 나중에 황화관에서 다시 나타났을 때 요괴들의 내력을 삼년전에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어 약간 모순인 듯. 참고로 황화관에서 지네요괴 백안마군과 싸울 때 고전하던 손오공에게 여산노모가 천화동 비람파보살만이 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비람파보살의 성격이 까다로우므로 자기가 알려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중에 자수 바늘로 요괴를 제압한다는 비람파보살의 말에 오공이 여산노모를 언급하며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바람에 들통이 나지 않았나 싶어요; 책의 주석에 따르면 비람파보살은 본래 불교설화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녀 중 하나였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전권 우마왕 에피소드에서 우마왕의 부인으로 나오는 나찰녀도 후에 정과를 얻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설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건지 아니면 나찰녀의 종류도 여러가지인지는 추측에 따를 나름이네요.
다음 이야기는 왠지 읽을수록 더 재미를 느끼게 되는 사타령 사타동 에피소드입니다. 주석에 의하면 여기에 나오는 사타국은 현장의 저서인 『대당서역기』에 기록된 사자국에서 변형된 나라로 서량녀국과 함께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이미 나라는 대붕마왕에 의해 멸망하고 요괴소굴로 변한 지 오래. 오백년 전 대붕이 사타국을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에 오백년 전 손오공이 의형제를 맺은 이들 중에 혼천대성 대붕마왕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는데 우마왕 때 손오공이 먼저 알은 체를 한 것을 생각하면 여기나오는 대붕마왕은 역시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됩니다. 참고로 이 팔백리사타령에 들어섰을 때 태백금성이 지나가는 노인으로 분장하여 경고를 해주자 손오공이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중으로 변신하여 접근합니다. 그런데 저번 주자국편에서 유래유거를 속여넘길 때 귀여운 동자로 변신하고, 오계국편에서 태자를 속일 때 아기 입제화로 변신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손오공은 왠지 귀여운 걸 좋아하는 듯. 그외에도 통천하에서 제물로 바쳐진 아이 진관보로, 두번째 파문편에서 잘생긴 청소년 승려로 변신한 경우도 있었군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비구국에서 어린아이들 천백열한명이 국왕의 보신거리로 심장을 빼앗겨 죽기 전에 손오공일행이 손을 써서 아이들을 구한다음 요괴 국구를 처치한다는 내용입니다. 요괴는 본래 하얀 숫사슴으로 남극수성이 타고다니던 것이었는데 남극수성 역시 큰 활약은 하지 않지만 나름 비중을 차지하는 신선으로 1권에서 삼장의 어머니 만당교가 어린 삼장을 갓 낳고 위험에 처했을 때 그녀를 정신차리게 하여 위기를 벗어나게끔 충고하고, 3권 진원대선의 인삼과를 뿌리 뽑은 이야기에선 손오공의 부탁을 받아 삼장이 긴고주를 외는 것을 당분간 만류하고 진원대선에게도 시간을 달라 부탁하는 등 오공 일행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어느 정도 급이 있는 신선 같지만 천봉원수였던 팔계가 조금 만만히 보는 것으로 보아 삼장의 제자들보단 아래에 있는 신선 같아요.
꽤나 눈여겨볼것은 『서유기』내의 무지막지한 요괴들이라도 나름 희로애락이 있고 애정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점인데, 비구국 국구는 능력 자체로는 그렇게 대단한 요괴는 아니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손오공과 저팔계에게 자기 딸인 백여우가 죽게 되자 그 시체를 보면서 애달프게 울며 슬픔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팔계가 요괴의 딸더러 남자를 홀리는 추찹스런 요물 운운하는 것은 좀 웃기는 것이 여자한테 가장 헬렐레하는 것이 바로 팔계란 말이죠. 다만 『서유기』내에선 본부인을 놔두고 남편이 다른 곳에 시선을 파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옥면공주 때에도 오공은 '돈으로 남의 남편 사는 X'이라며 때려죽이려 한 바 있었죠. 여기서도 비구국 국왕이 요괴의 딸에게 정신이 팔려 황후와 비빈들을 외면했었고, 오공이 요괴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자 그동안 외면받던 그녀들이 오공에게 정성을 다해 감사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구국 이야기가 끝나면 지용부인의 이야기가 초반에 시작하는 것으로 이번 8권이 마무리됩니다. 오공의 말을 듣다가도 안듣는 쇠고집을 가진 삼장법사가 기어이 요괴를 구해주는데요. 보면 『서유기』는 삼장법사의 외모를 보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저 호의를 품고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 나오는 경우가 많고 이번 진해 선림사의 라마화상은 아예 삼장의 귓볼을 잡아당기거나 얼굴을 쓰다듬거나 두손을 잡는 등 어린 아이처럼 호감을 표시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외모지상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런 외모를 지닌 삼장은 승려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빼면 나머지 일엔 영 맹탕이고 활약을 하고 능력을 보이는 것은 괴물같이 묘사되는 세 제자들인데 그들이 사람들더러 늘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외모지상주의를 까는 면모도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특히 사람들이 기겁하는 외모는 저팔계인데 생각해보니 저팔계의 외모에 관련된 것 중 제일 웃긴 이야기는 차지국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이 삼장일행을 묶을 때 병사들이 저팔계가 가장 흉칙하게 생겼다고 가장 먼저 묶어서 넘어뜨린 장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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