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이 생겨 책을 더 찾아봤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장편소설이 서너 권 정도 있던데 책에 대한 다른 정보들 없이 그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까 망설이다가 이 『산마처럼 비웃는 것』을 골랐는데 왠지 초반 설명이 으스스 한 느낌이 나는 시골 마을에서 표지에 그려진 것도 왠지 처녀 귀신 느낌 나는 그림인데다 산마(山魔)라던가 하는 것은 요괴인 것도 같고 미쓰다 신조 시리즈와는 달리 좀 더 토속적인 소재에 가까운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공포 소설 특유의 분위기라던가 신비주의적인 소재가 안 들어간 것은 아니나 책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니 토속적인 소재를 끌고 온 탐정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 책도 한 권으로 완성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에 읽은 '미쓰다 신조' 시리즈처럼 한 주인공이 권마다 사건을 맞닥뜨려 해결하는 이야기로 여기의 주인공은 괴이담을 수집하는 작가이자 탐정을 겸한 '도조 겐야'입니다.
즉, 이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작가의 '도조 겐야' 시리즈 중 하나로 시작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결편도 아닌 그 중간쯤에 있을 법한 내용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민속적인 괴이담이나 신기한 일을 수집한다는 데서 공포소설가이자 괴담을 수집하는 미쓰다 신조의 파편이 느껴지나 사건 해결에서는 친구인 아스카 신이치로에 미치지 못 했던 그와는 달리 도조 겐야는 상당히 유능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묘사를 보았을 때 처음 사건의 발단이 된 하도 지역 세도가의 막내아들 고키 노부요시의 원고에서 시대상을 설명할 때 한국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 호황이 언급된 것이나 길이 안 뚫려서 마차를 이용한다는 언급 등을 보았을 때 지금보단 좀 더 먼 과거 대강 5-60년대 혹은 더 가깝게 쳐도 70년대의 일본에 가까운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편견이라거나 화족 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주인공 도조 겐야의 가문이 꽤 대단한 가문인 것으로 보아 소설 속 일본 곳곳에 아직 전근대적인 요소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주인공 도조 겐야의 배경은 그냥 한 페이지 정도로 넘어가는데 이는 사건 해결과는 관계없이 독자에게 기본적인 주인공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차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화족이지만 가문을 잇기 싫어 뛰쳐나간 유명한 탐정이 된 도조 가조가 아버지로 도조 겐야 역시 탐정업을 잇기 싫어 집을 뛰쳐나온 뒤 괴이담을 수집하여 글로 쓰는 일에 종사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더러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상을 해결하여 사건 의뢰를 받기도 하여 곤란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심지어 도조 겐야가 가는 곳에 사건이 있는 것처럼 보여 주변 사람들, 편집부 동료들에겐 사신 같다는 농담을 받기도 하는 인물이라고요. (그런데 이것은 왠지 유명 소년 탐정 시리즈 주인공들더러 팬들이 하는 소리 같네요.) 도조 겐야는 자신이 하도 지역의 괴이담을 수집하다가 1년 뒤에 그 지역 유지의 막내인 고키 노부유키가 가문 특유의 성인 참배를 하다 미스터리 한 일을 겪고 이상해진 것을 알고 부탁 겸 호기심 겸,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아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 겸 사건에 뛰어들게 됩니다.
미쓰다 신조의 다른 시리즈들을 봐도 어떤 기록물이 등장하고 그 기록물이 미스터리를 해결할 주요 단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설을 읽다 보면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등 결말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면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놓고 결말 부분에서 도조 겐야의 입으로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터라 여기 부분에서 진실은 이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독자 입장에선 미스터리도 풀릴 겸 동시에 카타르시스도 느껴지는 듯 합니다. 처음 고키 노부요시의 기록물은 글쓴이 특유의 망상이 들어가서인지 완벽하게 괴담 내지 미스터리로 느껴지지만 이것이 후반 도조 겐야의 조사와 추리로 인해 현실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소설 초반은 정말 공포소설의 도입부 같은 느낌을 주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추리소설적인 느낌이 강해집니다. 솔직히 처음엔 등장인물이 하도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데 오히려 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일종의 트릭으로 등장해서 좀 놀랐다고 할까요. 보면 작가의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이 여러 역할을 한다거나 여러 인물이 한 사람 역을 맡는 것도 자주 등장하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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