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뒤표지에 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다른 시리즈인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의 후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만 소설의 시간 순을 살펴보자면 일단 소설 시리즈의 제1탄은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첫 번째로 나온 도조 겐야 시리즈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만 책이 나온 순서와 책 속 세계관의 시간 흐름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의 이름이 '사기리'인데 이 사기리는 전편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마귀 신앙을 받드는 집안의 무녀들이 갖는 이름으로 실제 소설 속 언급으로도 이 인물이 그쪽 집안과 관련자라는 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소설 상에서 도조 겐야가 그 이름을 듣고도 연구를 하면서 이름을 들어봤다고만 언급하고 그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했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이 시간 상으로는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보다 앞서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조 겐야와 동료들의 초반 대화를 통해 이번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산마처럼 비웃는 것』의 다음 시간대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또 이번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는 주인공인 도조 겐야가 그 출판사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어느 정도 분량을 차지하므로 그의 조력자인 편집부 기자인 소후에 시노와 민속학자이지 일본 신사 집안 출신인 선배 아부쿠마가와 가라스의 비중이 커지는데 아부쿠마가와 가라스 같은 경우는 본편의 사건을 제공함과 동시에 어딘가 단순하면서도 개성적인 면모를 어필하고 특히 소후에 시노는 거의 히로인 격으로 등장하며 내심 주인공인 도조 겐야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만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은 도조 겐야가 너무 둔감한 나머지 그 마음을 그만 눈치 못 채고 주위 사람만 눈치채게 되는 왠지 러브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모습들을 연출하기도 하는 등 이런 조력자들의 비중이 큰 부분은 그 분위기에서 전편과 달리 밝은 느낌이 많이 삽입되어 있어요. 이 둘이 과연 잘 될지 어떨지는 참으로 궁금하고 미묘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구성이 전편들과는 다르다고 느낀 것이 보통 다른 이가 쓴 새로운 기록물과 도조 겐야 중심의 현재 사건이 교차되어 사건이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도조 겐야의 시점과 도조 겐야가 재구성한 중심인물 쇼이치란 신사 집안의 소년의 시점이 교차되어 나와 특정 기록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 본편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관점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건의 전말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범인이 밝혀지는데요. 이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생각한 인물 혹은 가장 피해자라고 생각되던 인물이 실은 범인이었다는 결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사건의 결말조차 모든 의문이 풀리긴 했지만 그것을 소설 상에서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그 범인들의 정상을 참작해주는 결말로 갔는데 분명 우리가 보는 소설이 도조 겐야가 쓴 기록물이라는 설정이긴 합니다만 일단 이것은 독자 관점의 일이라. 뭐 사건의 미궁이 풀리다 보면 연쇄 살인의 피해자들이 한 짓이 상당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 상황을 이해한 주변 인물의 부탁도 간절한 것도 있었고요.
이번 사건의 열쇠도 일본 특유의 토속 신앙이 발단인데 그것도 다름 아닌 사람 기둥이라거나 하는 제물 전설, 일본에서 인주라고 하는 인신공양 신앙이 문제가 된 것이었거든요. 일단 일본 전통의 토속 신앙이 주 소재다 보니 그런 소재에 호의적인 미쓰다 신조의 작품 세계지만 이것을 굳게 믿고 지키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가 폐쇄적인 데다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등 호의적이지 않은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특이한 것이 이번 도조 겐야 시리즈에선 그 시대 배경이 배경인지 몰라도 이런 모습을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자국 내 국민들에게 전쟁에서 나가 죽은 뒤에도 나라를 지키라며 집단적으로 세뇌하고 그에 저항하던 사람을 핍박하는 시절과 닮았다는 묘사가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소설 상에 등장하는 과거 희생자 중 하나는 강제징병을 피해 도망갔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국민들을 맘대로 이용하고 버려도 된다는 당시 일본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신앙이란 이름으로 사람의 인권과 개인의 삶을 무시하는 일본 전통사회의 모습은 묘하게도 이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그 원류가 같다고 암시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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