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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 감상문

by 01사금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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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의 저자분의 이름은 '나선희'로 왠지 낯이 익어서 찾아보았더니 다름 아닌 제가 소장하게 된 유용강의 『서유기 즐거운 여행 - 西游記 새로운 해설』을 번역하신 분과 이름이 같아서 혹시나 싶었는데 이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의 마지막 장 참고자료 서적 부근에 같은 책이 있어 같은 분이란 확신이 들더군요. 일단 문고 사이트를 살펴보아도 이 『서유기』를 다루는 인문학 서적 자체가 상당히 수가 적다는 느낌을 받는데 다른 사대기서인 『삼국지연의』와 비교하면 그 관심도가 낮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분명 어린시절에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이나 혹은 서유기 자체를 아동대상으로 한 학습만화의 숫자를 본다면 『삼국지연의』 못지 않게 인지도가 있음에도 정작 백회본 『서유기』의 완역 서적 자체가 나온 것도 거의 최근의 일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서유기』에 흥미를 가진 뒤로는 인터넷 외에는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기회가 없다가 서유기 관련 연구서들을 찾게 되었는데 그 중 두 권은 이미 리뷰를 쓴 바 있습니다. 다만 두 책은 각각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를 번역하여 들어온 책으로 아무도 나라마다 같은 책이라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리뷰한 중국 서적인 『서유기 즐거운 여행 - 西游記 새로운 해설』은 그야말로 『서유기』라는 소설의 변천사를 상세하게 다룬 반면 일본쪽 서적인 『서유기의 비밀 -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은 도교라는 중국의 신앙이 어떤 식으로 서유기에 스며들었는지를 자세하게 다루는 바입니다. 둘 다 『서유기』를 연구한 책이지만 하나는 『서유기』라는 소설이 어떻게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하나는 『서유기』에 중국인들의 어떤 사상이나 관념이 들어갔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있는데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자료라 『서유기』 매니아들 입장에서 반가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선 『서유기』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는 살림에서 나온 e시대의 절대문학 시리즈의 세번째 나온 책입니다. 저자분이 서문에 밝히듯 『서유기』 소설은 분명 경을 구하러 가는 구도(求道)의 형식을 띄면서도 동시에 그 캐릭터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세속화되어 있음이 특징인데 저자분은 이 단어의 뜻이 속물화라고 오해하고 있다가 『서유기』에 대해 접하면서 이것이 다름아닌 개성화라는 뜻임을 알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서유기』는 분명 현대적 관점으로 본다면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황당무계한 주인공들과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모습은 현실 속의 사람들에 가깝다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한계없는 세계관일수록 현실의 모습과 경계가 적어지는 현상일 수 있으며 『서유기』는 단순 지괴(志怪)소설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풍자소설로써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편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성격은 고전소설 속 엄숙한 주인공이 아니라 그 면면을 살펴보면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런 모습들이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이 지나치는 곳에서 발견되며 이것이 읽는 이들의 흥미와 친숙함을 동시에 이끌어냅니다. 설령 역사적 왜곡이 좀 들어간다 하더라도- 삼장법사는 불심충만한 고승이며 진경을 구하러가는 경건한 법사이나 그 내면은 당대의 무능한 지식인을 닮아 고집세고 때로는 아둔한 판단을 내리면서 늘 제자들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고, 핵심인물인 손오공은 삼장을 모시면서도 때로 제멋대로 굴며 어린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다가고 시비판단에는 또렷한 불같은 성격을 보여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자유분방한 인간의 기질을 보여주고, 저팔계는 미련한 식탐가에 사고를 치지만 할 때는 할 줄 알며 때론 우직하고 그 바람도 소박한 농부의 모습을 담고 있고, 사오정은 조용하여 눈에 띄지 않지만 대신 일행의 조화를 이끌어내며 그 모습은 마치 근면성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지게 하여 『서유기』를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동에 웃고 울고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공감이 가는 등 보는 이들로부터 다채로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성은 주인공 일행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주치는 인간과 각종 요괴들에게까지 부여되어 흥미를 이끌어내고 이런 점이 서유기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여 현재에도 각종 만화나 영화, 게임으로 모습을 바꾸어 대중들에게 다가오지요. 이런 서유기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은 책의 2부인 '리라이팅' 부분에서 잘 설명되는 바입니다. 그런데 『서유기』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으로 이 서유기의 세계관의 독특함에도 있는데 책의 1부 서문에 "『서유기』에 나타나는 하이브리드형 존재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주인공들의 이러한 여러 공간에 대한 무애(無碍)라는 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나타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서유기』에서 등장하는 공간은 신들의 공간인 옥황상제가 있는 천궁 즉 하늘에 해당하는 선계 내지 천계가 있고, 부처님이 계신 서천과 관음보살이 머무는 남해, 죽은자들이 가는 명부, 바다 속 용왕들이 다스리는 용궁 그리고 주인공들이 여행을 하는 현실이 존재하는데 이 공간들은 따로 분리되어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비롯한 인물들은 자유자재로 이 공간들을 왔다갔다 합니다. 이는 공간들을 단절된 곳이 아닌 겹쳐진 공간으로 낯선 공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설화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바로 우리나라의 영웅설화인 '바리데기 설화'나 '강림차사 설화'에서는 저승 혹은 이세계로 가기 위해 주인공들이 발품을 파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저승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곳이 아닌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된 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관이 수평적인 세계관이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은 적 있습니다. 이것은 저편의 세계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아닌 언젠가 도달이 가능한 곳이라는 바람에서 말이죠. 책에서는 재미있게도 이런 동양 설화 또는 『서유기』의 공간적 개념을 현대의 영화 『매트릭스』에 비교하는데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공간은 가상공간이지만 주인공들이 그것이 가상임을 인식한 순간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자유자재로 가상공간에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을 쟁취하게 됩니다.

 

이 『매트릭스』의 공간 개념은 일종의 겹쳐진 공간으로써 『서유기』와 비슷한 면모를 담고 있으며 주인공들이 그 공간의 허구성을 깨닫는 순가 자유분방한 능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주인공들 역시 면면히 닮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매트릭스』의 이런 공간 개념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동양 철학에 꽤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어느 정도 유사성을 획득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드러나는 이런 가상공간 혹은 겹쳐진 공간에 대한 염원 혹은 고대 중국인들의 염원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상상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욕구의 산물이 이어진 것이며 현실에서 불가능한 곳을 실현가능케 하는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의 발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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