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다 신조의 소설들을 우연히 재미있게 읽고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없는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쓰다 신조의 '미쓰다 신조' 시리즈와 단권으로 끝나는 몇 편의 공포소설들을 읽게 되고 『산마처럼 비웃는 것』을 시작으로 작가의 대표작인 '도조 겐야'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도서관에 비치된 미쓰다 신조의 책들은 이제 도조 겐야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읽은 것 같았는데 그래서 이번에 빌려온 것이 바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입니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하얀 표지에 일본 인형을 본딴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제목에 '염매(厭魅)'가 뭔가 했더니 바로 뒷표지에 설명이 나와 있더군요. 염매란 것은 1. 가위 누르는 귀신, 2. 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라고요.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무언가 일본 토속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한 사건일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한데요. 미쓰다 신조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일본에는 전통 신앙이 각 집안마다 다양하게 전해지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일본 특유의 것이랄지 소설에서 그려지는 각 전통 신앙의 모습들은 동양의 불교나 도교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인데 특히 마을에서 세력이 강한 집안일수록 이런 독특한 신앙을 받드는 경향이 강한데 특이하게도 이 신앙 덕에 그 집안들이 세력을 얻긴 하지만 동시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산다거나 묘하게 따돌림을 당한다던가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번에 읽은 소설 『노조키메』에서도 비슷하게 집안에 얽힌 원한을 풀기 위해 가문 특유의 신앙이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 묘사되었고요. 거기다 이 도조 겐야 시리즈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이 삼십 년 전 정도이기 때문에 사람들 중에서 그 신앙에 대해 부정적이라도 주변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믿거나 하는 경우도 그려지는데 이번 소설 속 피해자들은 이런 신앙을 없애려다가 범인의 분노를 사게 된 셈입니다. 물론 순수한 목적에서 그 신앙을 없애겠다 한 건 아닙니다만.
이번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읽어나가면서 좀 복잡했던 부분이 많은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입니다. 거기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무녀 집안에서는 아예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섯 명이나 언급되기 때문에 읽을 때 더 헷갈렸는데 '사기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책에서는 이름 옆에 점을 표시하여 그 점의 숫자로 사람을 구분하게 합니다. 거기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은지라 으레 등장하는 사건과 관련된 기록물도 굉장히 여러 번 등장하며 사건의 중심이 되는 가가치가와 가미구시가에 얽힌 혼인 관계도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로 복잡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읽는데 참 애를 먹었달까요? 두 가문에 얽힌 앙금이 사건의 주요 배경을 형성하긴 합니다만 정작 사건 자체는 두 가문의 애증 관계보다는 가문의 신앙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도 특이점이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이름이 같은 사람이 여럿 등장하는 것도 소설 자체의 범인을 숨기는 나름의 트릭이었다는 것이 모든 반전이 밝혀지는 종장에 드러납니다.
이번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반전은 범인이 소설에서 계속 등장하면서도 그 존재를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도조 겐야의 배경에 대해서 이 1편에서 자세히 언급되나 싶었는데 딱히 그런 것은 없고 오히려 그 가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명탐정인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는 정도로 넘어가더군요. 물론 이 두 가지가 겐야가 사건에 개입하는데 도움을 주긴 합니다만. 읽어가다 보면 실은 의심받는 용의자가 이중인격이라거나 하는 의심도 했는데 실은 이것도 작가가 어느 정도 독자를 유도한 점이 있다는 게 밝혀지더군요. 다만 범인 자체가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어느 정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종장에는 미쓰다 신조 특유의 반전이 여럿 일어나는데 처음에 가능성이 있는 용의자부터 언급하여 결국 여러 가지 사정이나 요소로 인해 그것이 아님이 밝혀지고 막판에서야 진짜 범인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반드시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것은 아니라 실제로 범인의 행적만이 아닌 뭔가 초자연적인 것이 개입하긴 했다는 의혹을 남기면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도 특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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