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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 감상문

by 01사금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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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소설들은 단편소설집 『붉은 눈』을 처음 읽어본 것을 계기로 찾아보게 된 바 있습니다. 원래 공포소설 장르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특히 미쓰다 신조 소설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는데 예를 들면 작가 시리즈처럼 작가 스스로가 마치 직접 겪은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전개하여 몰입을 유도하고 허구의 소설임에도 어딘가 있었을 법한 느낌을 주며 오싹함을 안겨주는 점이나 혹은 각기 다른 이야기의 단편 같지만 실은 같은 소재와 테마를 간직하고 있어 이야기들이 각각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습니다. 물론 미쓰다 신조의 소설이 다 이런 것은 아니라 『집』 시리즈나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주인공이 처음부터 가공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소설들도 있지만 역시 미쓰다 신조의 소설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여겨졌던 소설은 미쓰다 신조가 작중에 나와 자신이 '수집'하였다고 고백하는 기록물들을 재편집하고 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택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런 소설들 같은 경우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동시에 다른 배경과 화자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장편소설임에도 단편소설집을 읽는 분위기가 나며, 또한 소설 내 트릭처럼 숨겨진 단서를 통해 마지막에 독자들이 궁금해했던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해 해답을 내려주기 때문에 막판에는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도 났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는 백사당으로 완결이 났지만 다른 소설들 제가 좋아하는 『노조키메』나 『괴담의 집』 같이 역시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직접 등장하여 어떤 기회를 통해 얻게 된 불가사의한 기록물이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 들려주는 형태의 소설들도 따로 있는 편인데 이 소설들도 작가 시리즈로 포함시켜야 하는가 하다가 정작 이 소설들 같은 경우는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직접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나서는 게 아니라 작가 시리즈와는 형태가 좀 다르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 속 미쓰다 신조는 이야기의 서문을 여는 이야기의 문을 닫는 존재와 같았다고 할까요?

 

이 소설 『괴담의 테이프』 또한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여러 출판물을 기획하거나 혹은 소설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던 도중에 지인들 소개로 만든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만나 새로운 기록물을 얻거나 혹은 친구나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담이나 미스터리 자료를 - 그것이 기록물이든 혹은 녹음이 된 것이든- 얻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제목의 「괴담의 테이프」라는 것은 이번 소설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소설 내의 언급에 따르면 이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자살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녹음 기록물-이 소설 내 기이한 이야기와 경험담을 끌어들인 것 같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미쓰다 신조의 소설 속에선 묘하게 특이 체험을 담은 기록 혹은 이야기 자체가 어떤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는 설정 역시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내에 실린 이야기들, 편의상 단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소설 처음의 서장과 소설 마지막을 마무리 짓는 종장, 그리고 간간이 작가의 근황을 담은 막간 정도를 제외하면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 「빈집을 지키던 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시체와 잠들지 마라」,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스쳐 지나가는 것」 총 여섯 편에 해당합니다. 이 단편들 속 주인공들도 자살을 결심한 4-50대의 남성들이라거나 대학생, 산행 동호회, 어린 소년, 막 취업을 한 젊은 여성 등 다양한 편으로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자살자들의 기록물을 옮겼다고 하는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이며 작가의 특기인 일본 토속 신앙이 발휘되어 흥미를 끄는 것은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추리에 근접하게 풀어낸 것은 「시체와 잠들지 마라」이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가 불가사의한 것은 「빈집을 지키던 밤」과 「스쳐 지나가는 것」, 읽으면서 가장 오싹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였습니다.

 

실제로 이번 소설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자살 기록물이라는 섬뜩한 설정의 첫 번째 단편을 제외하면 어딘가에서 있었을 법한 괴담이나 도시전설에서 이야기를 따 왔다거나 혹은 현실에 일어나기 어렵다 판단되는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한 이야기들로 그동안의 미쓰다 신조 소설들에서 많이 보아왔을 내용이기 때문에 어딘가 익숙한 면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괴담의 테이프가 그동안의 미쓰다 신조의 소설과 좀 다른 점이 있단 것을 눈치챘는데 다른 소설 『괴담의 집』이나 『괴담의 집』 같은 경우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더라도 그 소설 속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미스터리 현상이나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번 『괴담의 테이프』에서는 내용에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하기는 하나 정작 소설 내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는 공통된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고 할까요? 어떤 것은 요괴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죽은 자의 원혼이나 사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이 미스터리의 단서는 소설 내에 포진되어 있으므로 소설을 재감상할 경우 다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단편 중간중간 삽입되는 작가의 근황 같은 것에서는 특이한 기록물을 얻은 뒤 일어나는 주변 사람들의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담이 실려 있는데 어디까지나 이것은 소설의 분위기를 위한 내용이라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역자 분의 후기에서조차 기이한 체험을 했다는 글이 실려 있어서 이게 진짜인지 아니면 소설 내의 이런 분위기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서 삽입된 글인지 궁금해하다가 문득 책을 완독하려고 다른 가족들은 다 자는 한밤중에 혼자만 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기이한 체험담 고백에 반신반의하다가 나도 비슷한 환각을 겪는 게 아닐까 오싹해했는데 읽다가 또 섬뜩해진 것은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까지 읽다가 이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가 다름 아닌 저 표지 그림의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고 심지어 표지 그림의 여자가 예전 인터넷 괴담으로 퍼졌던 자유로 귀신과 닮아 좀 공포심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기대(?) 했던 공포스러운 체험은 없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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