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유기 즐거운 여행 - 西游記 새로운 해설』의 표지 속에 저자의 설명이 나와 있는데 저자인 유용강은 북경대학교 중문과 교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즉, 이 책은 중국인의 시선으로 『서유기』를 분석하고 연구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책을 주문하기 전에 책의 리뷰를 찾아본 결과 학술서적으로 소설보다야 당연히 내용이 딱딱하여 지루할 수밖에 없지만 『서유기』에 흥미를 가지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가 된다는 게 이 책의 요지 같더군요. 다만 책의 아쉬운 점으로 오자나 띄어쓰기 오류들이 보인다는 점인데 그래서 처음엔 이 책을 주문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서유기』 관련 연구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고 그런 외부적인 문제 몇 가지는 제외하더라도 내용은 매우 훌륭하단 리뷰가 있어 결국 망설이지 않고 다른 책과 함께 주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막상 보니 학술서적이기에 조금 어려운 단어가 많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정작 어려웠던 점은 중국인 인명이나 서적 이름의 음이 그대로 표기되는 것이 아닌 중국어 한자 원문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오자가 많은 것은 확실한 편) 고유 인명이나 책 이름 같은 것은 『서유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대강 알아볼 정도인데 예를 들자면 『대당서역기』라거나 『대당삼장취경시화』와 같이 『서유기』의 모태가 된 작품들은 예전에 미국의 위키백과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아본 경향이 있어 넘어갈 수 있었어요. 다만 인용된 중국인 학자들의 이름 같은 경우는 거의 읽기가 힘들었는데 현재의 학자들이라기 보단 『서유기』의 유행시기를 짐작할 수 있듯 명나라-청나라에 속한 학자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서유기』의 존재와 변천에 대해 알 수 있는 증거물로 우리나라 서적 역시 빠지지 않고 한 권 등장하는데 바로 조선 초기 역관들이 교과서로 썼다는 『박통사언해』에서 『서유기』 소설, 현재의 백회본으로 완성되기 이전의 소설의 파편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언급됩니다.
현재 제가 소장하고 있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완역되어 나온 10권짜리 『서유기』의 마지막에는 상당한 분량의 부록으로 역자의 글 「서유기의 탄생과 변천과정」이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소설 『서유기』가 현장 삼장이 이룩한 일대의 모험에서 비롯되어 점차 어떤 식으로 현대의 소설 버전에 가까워 졌는지 그 변천 과정과 등장하는 각 캐릭터의 개성적인 특성, 그리고 『서유기』의 진짜 작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요. 부록의 글이 참고한 자료들은 대개 1990년대의 중국 논문들인데, 제가 읽은 『서유기 즐거운 여행 - 西游記 새로운 해설』은 작가 서문에 2007년, 책의 초판 인쇄는 2008년이라 쓰인 걸 보아 책이 나온 것이 늦어도 2000년도 후라고 보입니다. 아마 참고자료들 중엔 겹치는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서유기 즐거운 여행 - 西游記 새로운 해설』은 제가 완역본 『서유기』에서 부록으로나마 접한 『서유기』 분석을 좀 더 상세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가 부록에서 기억하는 손오공의 캐릭터성의 원형은 인도 불교 신화의 원숭이왕 하누만과 중국 도교 신화의 원숭이 무지기로 보면서 중국 전통 도교와 외래 종교인 불교 사이에 줄다리기 현상이 보인다고 분석된 데 반해 이 책에선 손오공의 캐릭터는 하누만(책에선 음차로 ‘합노만’이라 표기)도 무지기도 아닌 소설 『서유기』의 발달 과정에 따라 형성된 중국 고유의 것이라 보는 경향이 있더군요.
일단 소설 『서유기』의 원형이 당대의 현장 삼장 법사가 목숨을 걸어가며 인도까지 불경을 구하러 떠난 여행에서 시작되었듯이 책의 시작도 이 삼장의 일대기로 시작합니다. 현장 삼장의 본래 이름은 진위(陣褘)로 (책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삼장법사의 가문은 수나라 귀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고 형인 장첩법사와 함께 출가하여 현장이라는 법명을 얻습니다. 하지만 당시 불경은 번역이 완전치 않아 각기 해석이 난무하여 종파마다 논쟁이 끊이지 않자 좀 더 확실하게 경전에 다가가기 위해선 불교의 본토(인도)로 가서 직접 접하고 배워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소설과는 달리 당태종과의 의형제 맺는 일은 없으며 당시 당태종은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안정시키기 위해 백성들이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였고, 역사 속 삼장 법사의 모험은 그 서장부터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요. 그렇게 고향을 떠나 십여 년이란 시간이 걸려 대업을 완수한 삼장법사는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완 달리 환대를 받으며 당나라로 돌아왔고 이 고승의 행적에 사람들의 상상력이 붙게 되면서 『서유기』의 원형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책에서 지적하는 점으로 『서유기』를 읽는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점이 있는데 소설 『서유기』는 온전히 서쪽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라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삼장이 직접 기록한 『대당서역기』와 같은 책과 달리 소설 『서유기』에서 묘사되는 각국의 모습은 중국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대 사람들의 상상력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저자는 소설 『서유기』가 좀 더 이국적인 색채를 가미했더라면 더 흥미로운 소설로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서유기』의 모태는 점차 후반으로 갈수록 그 주인공이 삼장법사가 아닌 손오공으로 이동하면서 우리가 아는 『서유기』에 근접해 갑니다. 일단 『서유기』의 모태 내지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송대의 『대당삼장취경시화』로 이 작품에서 현대의 백회본 『서유기』의 에피소드와 유사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으며 '서유기잡극'의 요소, 혹은 현대 백회본 에피소드 중 일부의 이야기를 먼저 형상화한 일종의 단편소설이라 볼 수 있는 작품부터 『서유기』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고루 퍼져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서유기』 백회본의 완성 이전에는 이렇게 널리 흩어진 당상잠과 후행자의 모험 이야기가 파편으로 존재했고 누군가(!)가 이 흩어진 이야기들을 모아 제대로 된 하나의 소설로 완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이 과업을 해낸 이를 ‘오승은’으로 보고 있으나 책의 마지막 장 저자에 관한 논쟁을 본다면 아직도 소설 『서유기』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게 결론입니다.
책에서는 『서유기』의 각 캐릭터별 특징과 상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면서 또한 『서유기』의 사상성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듭니다. 세간에 영향을 많이 끼친 장편소설일수록 그 파급성이나 사회의 어떤 부분과 일치했는가가 주요 쟁점이 되는 것 같은데, 『서유기』 역시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상징적으로 해석이 되어 왔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서유기』가 좀 더 긴밀하게 파고든 경향은 없다고 봐야 하며 - 보면 종종 국정을 농단하는 요괴 출신 도사들을 징벌하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이 어떤 식으로 정치를 농단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보다는 주인공들과의 대결에 더 초점에 맞춰져 있고 불교를 치켜세운다고 하기엔 곳곳에 도교적인 색채 역시 풍부하며 일단 세 명의 주인공들은 전부 도교의 신선 출신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무리 불교에서 높은 신이라 하더라도 신성한 모습보다는 세속적인 모습이 첨가되어 개성을 더 하고 있고, 어떤 에피소드에 한해서는 불교 쪽 신들의 책임이 크거나 그들의 힘이 미미한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는 점입니다.
즉, 외면적으로는 도교보다 불교를 좀 높이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파고들면 불교 역시 도교 못지않게 교묘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실제로 종교의 참모습에 가깝다기보단 당시 작자들이 처한 현실의 상황 - 명 말기의 혼란상 -을 신과 인간, 요괴와 인간, 신과 요괴의 모습으로 비유하여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서유기』의 형성 과정에서 명 말에 등장한 새로운 학풍인 심학(心學)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이 심학은 계속 이어져온 주자학의 가르침이 아닌 사람의 마음, 사람이 본래 타고난 개성을 중시하는 학문으로 명 말의 혼란으로 인해 왕권 추락은 공교롭게도 사상의 자유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명 말 환관들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황제의 권위는 자연스레 떨어졌고 지배층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구도가 강해지긴 했지만 황제가 정사에 관심을 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상에 대한 감시도 느슨해지는 계기를 마련했고 기존 학문에 대한 거부 내지 당대 문학에서 황제와 권력층에 대한 비판을 할 자유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을 토대로 볼 때 『서유기』는 종교 친화적인 소설이라기보단 당시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개성적인 영웅상과 그들의 삶의 반영,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는 소재와 내용, 사상의 자유로 말미암아 생겨난 풍자와 현실 비판이 가능했던 소설이며 이는 『서유기』의 주인공들만 아니라 잠깐 등장한 인물들에게도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매력과 개성을 부여한 완성도 높은 소설이라는 사실입니다. 외에도 책에선 『서유기』 특유의 문장과 골계미, 『서유기』의 유행으로 쏟아져 현존하고 있는 『서유기』의 아류작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바입니다.
아류작에 대해선 아는 바 없는데 보면 『서유기』의 패러디와 유사한 작품에서 소재를 차용해서 독자적으로 작가가 진행하는 내용까지 다양합니다만 그 탄생 상 원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한계 역시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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