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쓰게 된 포스트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3권으로 축약된 『서유기』 번역본입니다. 이 『서유기』 번역본은 기존 문학과 지성사의 완역본에서 각종 시구를 생략하고 고전적인 부분은 현대적으로 써서, 총 100회의 이야기 중 저자가 엄선한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책은 읽기 쉽고 소장도 어렵지 않은 3권이 완권 분량이긴 하나, 분량의 문제로 완역본 『서유기』의 자잘한 개그씬들이 생략되거나 좋아하는 에피소드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고요. 나름의 아쉬운 점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완역본에선 적었던 삽화가 다양한 모습으로 종종 삽입되어 있어 이것을 보는 재미가 있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삽화는 청대의 고화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들이에요.
완역본 『서유기』의 1권은 태초의 거인 반고가 세상에 태어나 하늘과 땅을 갈라 세상을 창조한 싯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대 중국인들이 생각한 우주의 돌아가는 이치를 자잘하게 설명한 다음 인간이 나고 자라는 시대에 왔을 무렵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의 신성한 돌뿌리가 스스로 신령한 기운을 잉태하여 돌알을 하나 낳았는데 그것이 돌원숭이의 형태를 띄우고 생명을 얻었고, 그 돌원숭이의 눈에서 솟아난 빛이 천궁의 옥황상제의 자리까지 위협하자 천궁에서 천리안과 순풍이 두 천사를 보내 사실을 확인한 다음 영기가 뛰어난 원숭이라도 하계의 탁한 물과 공기를 마시면 그 기운이 사라질 것이라 낙관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축약본 『서유기』에선 앞의 우주의 생성 부분이 과감히 생략되어 화과산의 신성한 돌뿌리가 손오공을 낳는 부분부터 시작하고 천계에서 사자를 보내 그 존재를 확인하는 부분 역시 빠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소소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긴 하나 줄거리에 큰 지장은 없을 정도고요. 다만 손오공의 천궁소동 부분이 이 1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손오공이 삼장을 만나 서역행을 떠나는 것이 『서유기』의 주 이야기임에도 이 천궁소동 편이 강렬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잘라내고 할 것도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손오공이 수렴동을 발견하고 원숭이왕으로 추대된 후 죽음을 피하기 위해 남섬부주 땅으로 건너가 수보리조사로부터 도술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각종 요괴들을 지배하고 육대마왕과 의형제를 맺는데요. 여기선 육대마왕의 이름들이 우마왕을 제외하면 언급되지 않고 구렁이요정이나 독수리요정으로 설명되어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무슨 대성을 칭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오공이 용궁과 저승에서 깽판을 치고, 천궁의 필마온 관직을 받아 그게 맘에 안든다고 때려치우고 제천대성을 칭하며 나타삼태자와 목차행자, 이랑진군을 비롯 쟁쟁한 천궁 장수들과 맞서는 내용은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다시 읽을수록 판타스틱함과 종횡무진함이 느껴져서 즐겁다고 할까요. 이 천궁소동의 초장에서 생략된 부분 중 생각나는 것을 고르자면, 앞의 우주의 창조 부분과 천리안과 순풍이가 오공의 탄생을 확인한 것, 수보리조사가 도술을 가르쳐주기는 하되 그에게 자신에게서 도술을 배웠다고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보면 불로불사를 얻는 방법 중 하나로 신령, 신선, 부처가 되면 된다고 앞에 언급되는데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당시 중국의 문화는 도교적인 색채가 더 강했을 거라는 추측이 들더군요.
『서유기』가 불교쪽 성자의 당삼장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진주인공인 손오공이 도교 쪽 신에 가깝다는 점이나 그에 맞서는 요괴와 그를 조력하는 인물들이 상당수가 도교의 분위기를 강하게 띄고 있다는 점에서요. 그나마 책에서 빠져서 좋은 에피소드는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당태종의 저승행인데 이 이야기는 경하용왕이 점술가를 시험하는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일인데 기쁘게도 여기선 단 몇 줄 정도로만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경하용왕 이야기가 빠진 탓인지 다음권 목차를 봐도 소타룡 이야기는 보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당삼장의 출생 이야기 역시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었는데요. 이는 본디 문학과 지성사판 완역본에선 본편의 회차에 집어넣은 이야기이긴 하나 다른 번역본에서 강류승 출생과 복수 이야기는 부록으로 다뤄질 정도고 굳이 빠진다고 『서유기』 줄거리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라서 그런 듯합니다.
대신 빠져서 아쉬운 이야기 중에 관음선원의 흑풍대왕 에피소드가 있는데 관음보살이 전해준 보물 금란가사를 도둑맞는 이야기는 앞의 당태종이 저승행 이후 불교에 감화되어 나병에 걸린 승려로 변신한 관음보살을 초정하여 금란가사와 구환석장 두 보배를 받는 이야기가 생략이 되어 그런 듯 합니다. 진산태보 유백흠과의 만남도 그럭저럭 중요치 않은 부분이라서 그런지 신세를 졌다 정도로 생략이 되어 있는 반면 서역행 가장 첫번째에 만난 요괴 인장군, 웅산군, 특처사가 삼장의 종자들을 잡아먹고 태백금성이 나타나 삼장을 구해주는 이야기는 그대로 나와있어요. 태백금성이 『서유기』 내내 오공 일행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고 일단 따르는 종자들이 제거되어야만 후에 얻는 제자들이 성립이 되어서 이 부분은 빼기 어려워서일 듯...
오공과 삼장이 양계산(오행산)에서 만나고 나면 바로 저팔계를 만나는데 이 부분도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전해주고 앞일을 예언하는 오소선사와의 만남이라던가 자잘한 개그씬이라거나. 완역본에선 팔계에게 팔계라는 법명을 지어준 것은 삼장이지만 여기선 팔계가 오능이란 법명 말고도 스스로 계율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팔계란 이름을 붙였다고 나옵니다. 저팔계 편에서 오소선사와의 만남이 생략된 탓인지 다음 황풍령편에선 삼장이 스스로 반야심경을 알아서 외는 장면이 나옵니다. 황풍령 이야기는 후에 중요한 에피소드로 기억될 화염산에서 도움을 주는 소수미산 영길보살의 등장 때문인지 빠지지 않고 나와있어요.
이 1권 축약본에서 빠져서 가장 아쉬운 에피소드는 삼장이 사오정까지 제자를 얻고 나면 (여기서 오정에게 귀의하면서 화상의 품위가 모습에서 보인다고 사화상이란 별명을 붙여준다는 부분은 생략) 완역본에선 관음보살과 보현보살, 문수보살, 여산노모가 과부와 세딸로 변신하여 삼장일행을 유혹한 뒤 시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특히나 개그로 점철되어 좋아하는 에피소드지만 여기선 분량문제인지 생략되어 있습니다. 반면 진원대선 이야기는 조금 생략되는 수준에서 나오는데 이 에피소드도 막 재미있게 본 것은 아니라 분량이 짧아진 것은 좋더군요. 하지만 그 덕에 제가 좋아하는 에피소드인 황포노괴의 이야기는 앞당겨졌는데 그전에 백골부인이 인간으로 위장한 것을 때려죽이다가 손오공이 파문당하는 것도 빠지지 않습니다.
다만 완역본에선 오공이 마지막으로 백골부인을 죽일 때 인간이 아닌 요괴를 죽인것을 증명하기 토지신과 산신령들을 불러 모아 증인을 세우려고 하지만 여기 축약본에선 그런 것 없이 일단 요괴는 죽이고 설득해야겠단 생각으로 요괴를 때려죽입니다. 근데 어찌보면 이 축약본 내용이 더 맞는 것이 완역본에서 오공이 산신령과 토지신을 불러모았어도 이들이 삼장에게 나타나 오공의 요괴 살인행적에 증언을 해주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결국 오공이 한 행동에는 별 의미가 없었거든요. 이 부분은 소설 전개상 차라리 빼는 것이 더 사리에 맞는 부분이었어요. 오공이 쫓겨나고 팔계가 구박하므로 오공은 오정에게 '넌 착한 동생이나 내 말을 잘 들어서 삼장을 보필하라'며 충고하고 떠나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데 다시 읽을수록 느끼는 거지만 삼장이 못난 자식이라고 팔계를 더 편애한다면 오공은 반대로 팔계보다 오정을 더 맘에 들어하는 거 같습니다.
싸움에는 항상 팔계를 대동하지만 요괴한테 동생들이 붙잡히면 일단 오정을 풀어주거나 이번 황포노괴편 마지막에서 오공이 쫓겨날 때의 설움을 오정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오정이 삼장을 구해달라고 청할 때는 맘을 푼다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거든요. 이 황포노괴편에선 특이하게도 백화수 공주 부분이 많이 유하게 나왔어요. 사오정이 황포노괴에게 잡혀왔을 때 오정의 거짓말로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은 완역판에선 자길 죽이려 한 황포노괴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용서를 빌자 연약한 여자라 금세 맘이 풀어졌다는 묘사가 나와 왠지 매 맞는 여자를 연상케 하는 반면, 이 축약본에서 그 묘사 하나가 빠진 것만으로 그런 느낌이 사라져서 오히려 오정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쓰는 등 여성조력자의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거기다 백화수공주가 낳은 요괴의 자식 두명을 오공이 오정을 구하기 위해 인질로 삼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 아이들을 팔계와 오정이 궁으로 데리고 가 황포노괴를 도발하기 위해 섬돌에 던져 죽이는 섬뜩한 장면은 빠져 있고 백화수와 함께 숨어있게 하면서 잔혹함이 상당히 줄어들었어요.
다만 축약본에서 백화수가 나중에 궁으로 갔을 때 요괴아이를 대동하고 갔다는 설명은 없어서 이런 부분에선 모순점이 생기는 듯... 1권은 이렇게 황포노괴의 이야기로 종결되는데 완역본의 순서대로라면 4권 초반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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