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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6권 감상문

by 01사금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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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내에서 제가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상당수가 여기 6권에 실려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6권의 내용을 간추리면 독각시대왕 이야기, 서량녀국에서 잉태물을 마시고 삼장과 팔계가 임신하는 이야기, 전갈요괴가 삼장을 납치해 혼인을 강요하는 이야기, 손오공이 파문당한 사이 가짜 손오공이 판치는 이야기, 그리고 고대하던 서유기의 클라이막스 우마왕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리고 이 6권에 등장하는 요괴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요괴들이 많은데 가장 인상이 강렬한 우마왕은 말할 것도 없고, 여자요괴들 중에서 가장 요괴답게 악랄하여 인상적이었던 전갈요괴도 그렇고요. 참고로 전갈요괴는 서유기내의 여자요괴들의 패턴(삼장의 원양을 노려 납치를 시도한 뒤 결혼 강요)을 가장 먼저 보여준 요괴이기도 해요. 그리고 특이한 무기를 이용해 손오공을 핀치로 몰고간 독각시대왕이나 등장요괴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목적을 가진 육이미후 등.

독각시대왕 에피소드는 금강탁이란 무기의 재등장 말고도 독각시대왕의 무예를 손오공이 인정한 면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맨손싸움은 손오공이 좀 더 위라고 나오더군요. 일단 구원병으로 청해온 이천왕과 나타태자, 화덕성군과 뇌공, 수백등의 무기를 뺐겼다가 손오공이 다시 훔쳐온 뒤 또 고리에 의해 빼앗기자 서로를 탓하며 원망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수백은 제외, 수백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고만 나오는 편)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겉으론 웃어보이며 그들을 위로하는 손오공의 나름 어른스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석가여래를 찾아가 십팔 나한들의 도움을 얻을 때 항룡과 복호가 뒤늦게 왔다고 펄쩍 뛰면서 자기가 나중에 악을 썼으면 안왔을 거라고 억지생떼를 쓰는 등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서량녀국 자모하 에피소드는 사오정이 활약하는 부분이라 더 좋아합니다. 저팔계와 삼장이 자모하의 물을 마시고 잉태를 하자 낙태천의 물을 구하러 간 손오공은 그곳의 주인을 자처한 여의진선이란 도사가 우마왕의 아우인지라 홍해아를 죽였다고 오해받아 싸우게 되는데요. 손오공의 실력이 실력인지라 대등하게 맞설 순 없고 물을 길러갈 때마다 갈고리로 넘어뜨리는 수법만 써대는 녀석이 나중에 사오정을 데리고 온 손오공을 보며 스승의 명을 억지로 받아와서 싸울 의욕이 없어졌고 그래서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는 둥 제자와 이야기를 하며 황당한 개그씬을 선보입니다. 손오공이 여의진선을 상대하는 사이 사오정이 물을 뜨고 그냥 그놈은 용서하라고 말하는데요. 여기서도 사오정의 자비로운 면모가 나타나는데 물을 기는 것을 막는 여의진선의 제자를 때리기만 한뒤 살려보내고 여의진선도 그만하면 됐다고 말리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말을 듣고 손오공도 여의진선을 넘어뜨린 다음 쇠갈고리를 동강 내버리기만 하지요. 일단 살려주긴 하지만 자존심은 박살낸듯.

이 여인국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특이하게 서유기에선 여성이 먼저 남성에게 매달리는 경우가 좀 많습니다. 저팔계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텐데, 시대적인 성 편견이 묻어나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합니다. 여기선 삼장이 잘생긴 얼굴을 보고 여왕이 반해서 여기에 실린 말대로라면 '점봉승란' 뜻을 풀이하자면, 봉황을 차지하고 난새를 탄다는 뜻으로 남녀가 교접하여 부부가 되는 것을 비유한 노골적인 애정표현이라고 책에 주석이 달려 있어요. 여왕이 이 말을 하는 바람에 삼장이 너무 놀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이 한자로 된 성어라 딱 와닿는 게 없지만 현대적으로 풀자면 여자가 먼저 '모텔가서 섹X하자'라고 하는 것에 버금가는 이야기려나요? 때마침 전갈요괴의 난입으로 여난은 극복되긴 합니다. 물론 전갈요괴건이 따지고 고면 더 큰 여난이지만.

육이미후 에피소드도 사오정이 활약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가짜 손오공을 진짜 손오공으로 착각한 삼장법사가 빼앗긴 짐을 되찾으려 할 때 저팔계는 사이가 나빠 도리어 때려눕힐 것이라며 사오정을 대신 보내거든요. 화과산 수렴동에서 두목노릇하던 육이미후는 아예 가짜 일행까지 만들고 가짜 사오정을 본 진짜 오정이 노하여 그것을 때려눕히니 원숭이 요정이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역시 요괴는 요괴인지라 오정이 때려눕힌 원숭이 시체를 가짜 오공과 나머지 원숭이들이 볶아먹는다는 허덜덜한 묘사를 제가 지금껏 첨부하지 못했었네요. 가짜 오공과 진짜 오공 사이에 한판 싸움이 붙어 남해와 천궁, 저승을 오가며 진위를 판단하는데 천궁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그냥 쫓아내자 이 두 오공이 천궁 사람을 보고 깔깔대고 비웃으며 멱살잡고 나오는 장면도 꽤 인상적입니다. 

도대체 천궁의 품위란 없습니다. 그런데 저승의 체청이란 동물이 여래의 법력만이 사실을 판단할 것이란 말에 겁을 먹기는 커녕 그대로 영취산까지 간 걸 보면 육이미후는 안들킬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죠? 그리고 마지막 화염산 에피소드는 최근 읽고 있는 나중에 따로 찾아본 축약본 소설 버전에서 어쩔 수 없이 재미난 부분들이 생략되어 아쉬웠는데 제대로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에서도 드라마 나름의 각색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원본의 재미난 부분도 제대로 살려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손오공이 가장 귀여웠던 장면은 옥면공주더러 '돈으로 남의 남편 뺏은 X'이라고 화를 내며 쫓아가는 장면인데 생각해보면 옥면공주 입장에선 봉변도 이런 봉변이 없지만 왠지 이미지로 상상하면 조그만한 몸뚱이의 손오공이 불륜을 미워하며 여의봉을 들고 뛰어가는 게 떠올라서 귀엽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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