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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4권 감상문

by 01사금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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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의 시작은 지난 3권의 황포노괴편이 이어지는데 이 보상국 에피소드가 여러모로 재미난 점은 악당의 역할을 맡은 요괴가 꽤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전권에서 사오정이 붙잡혔을 때 백화수공주가 몰래 편지를 전해줬을 거라고 추측해서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이번 4권에선 손오공이 사오정을 구한 다음, 두 형제에게 요괴의 자식들을 궁에 데리고 집어던지라 하자 사오정이 풀려난 것을 보고 저팔계가 쳐들어왔거나 혹은 마누라가 풀어줬거나 하여간 자신에게 덫을 놓으려고 저런 짓을 하는 것이라 추측하여 자신의 집인 완자산 파월동으로 돌아와 일단 사실여부부터 확인하려 하는 등 여타 요괴들과 다르게 신중한 면모도 있어 보이고요. 거기다 하늘나라의 성관 규목랑이란 게 밝혀진 이후로 종종 손오공 일행을 도울 때 나타나기도 하는 등 적이었다가 완전히 아군으로 돌아선 독특한 입지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물론 이번 편이 특히 좋은 이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오정이 여기서 활약을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호랑이 요괴 누명을 쓴 삼장을 구하러 궁에 당도한 손오공이 삼장에게 자길 쫓아내고 무슨 꼴이냐며 착잡한 대사를 하고 삼장을 부추긴 저팔계에게 비아냥거리자, 이런 손오공에게 자신들의 힘이 부족해서 그를 모셔왔으니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삼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며 마음을 풀어주는 것도 사오정입니다. 뒤에 나올 홍해아 편에서 긴고아주를 외려는 삼장을 말리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오정인데 나머지 셋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면 그것을 중재하는 역할인 셈이지요. 또 사오정이 제일 의리 있는 것이 후반 홍해아가 삼장을 납치할 때 손오공은 삼장이 자기 말을 안 들은 탓이라며 서로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고 저팔계가 동조할 때 그 셋을 다그치며 임무를 완수해야 되는 게 자신들의 의무라며 제자리를 잡게 하거든요.

서유기에 나오는 싯구에는 종종 오행에 빗대어 주인공들을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4권 자주 등장하는 시구에 의하면 손오공은 '金' 또는 火에 저팔계는 '木' 또는 '水'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오정은 '土'라고 언급되고요. 이 점 때문에 사오정이 살던 유사하가 실은 모래로 이뤄진 강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기도 한데 저팔계가 나무고 손오공이 금 혹은 저팔계가 물이고 손오공이 불이라면 보통 오행상에서 이 둘은 대립되는 기질이니 소설 상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거리는지 이해가 가기도. 그런 성질을 증명이라도 하듯 4권에 등장하는 내용 중에는 손오공이 저팔계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가 많은데 예를 들어 나무꾼으로 변신한 일치공조의 충고를 듣고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을 경계하려는 이야기에선 손오공의 반협박으로 먼저 순찰 나간 저팔계가 게으름을 부리자 딱따구리로 변신한 손오공이 그 주둥이를 마구 쪼아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에 저팔계가 그것도 모르고 신경질을 내며 중간에 본 바위를 상대로 삼장일행에게 거짓말하는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가 결국 손오공에 의해 진상을 들키고, 재순찰을 나서게 되는데요. 이때 지나가던 호랑이나 바람에 굴러가던 고목나무, 날아가던 하얀 갈까마귀를 보고 손오공이 또 변신하여 감시를 나온 줄 알고 지레 놀라는 장면은 개그성이 충만해요. 거기다 은각대왕이 초상화를 가지고 삼장일행을 잡으러 나왔을 때 저팔계와 마주치자 주둥이가 큰 놈이 저팔계라며 잡힌 저팔계더러 주둥이를 내놓으라고 하자 자긴 '배냇병신이라 주둥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들러대거나, 붙잡힌 저팔계더러 쓸모없다던 금각대왕의 말에 자기는 쓸모없고 사람값도 못 드는 물건이니 놔달라고 하다가 도리어 술안주감으로 예정되기도 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또 삼장과 사오정이랑 같이 붙잡혀있을 때 손오공이 은각대왕을 처치하자 손오공은 술법이 뛰어나니 그런 줄 알고 자신들을 풀어준 뒤 대접하라고 외치다가 오히려 금각대왕의 불편한 심기를 부채질하는 바람에 삶아먹힐 위기에 처하기도 하느네요. 이때 부하들이 껍질을 벗기면 더 잘 삶아진다는 말에 자신은 그냥도 잘 삶아지니 그냥 삶으라고 소리치는 등 다양한 개그를 도맡습니다. 문제는 개그만이 아니라 민폐 속성도 같이 따라붙어서 형제요괴의 부하들이나 어머니로 변신한 손오공에게 소리를 질러 정체를 들통나게 할 뻔하는 짓도 저지릅니다. 민폐와 개그는 한 끗 차이인 걸까요? 하지만 금각은각대왕편에서는 주인공 일행만이 아니라 부하요괴인 정세귀와 영리충도 개그를 일삼는데요.
선인으로 분장한 손오공이 요괴들의 보물인 양지옥 정병과 자금 홍호로를 하늘을 담는다는 가짜 호로병과 바꿔치기하는 대목에서 정세귀가 손오공이 몰래 중얼거린 하늘신들을 협박하는 대사를 주문으로 착각하여 외운다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며 - 대충 대사가 싫다는 말이 나오면 하늘궁전을 때려 부숴주겠다-,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맞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좋아하는 나름 순박한 모습도 보여요. 물론 이 둘은  막판에 손오공이 연화동을 때려 부술 때 같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지만요. 그런데 웃긴 건 금각은각형제는 자기 어머니가 손오공한테 죽었어도 손오공을 붙잡았으니 잘됐다며 서로 술잔을 돌리는 짓을 하더군요. 역시 근본이 요괴라서 그런 걸까요?

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요괴의 다섯 보물은 대답하면 무조건 빨아들이는 자금홍호로와 양지옥정병, 금각대왕이 손오공과 싸울 때 쓴 칠성검과 불을 일으키는 파초선, 요괴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주문으로 상대를 붙잡는 밧줄 황금승인데 이 다섯 가지는 본래 태상노군의 보물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언급했듯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은 태상노군의 금로와 은로를 지키던 두 동자인데 은각대왕이 죽었을 때 금각대왕이 통곡하며 은각과 함께 하늘나라를 떠나 부귀를 누리려 연화동의 주인으로 살려했다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태상노군은 관음보살의 부탁으로 동자를 빌려줬다고 하는데 정작 요괴들은 자기들이 원해서 하늘나라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이건 동자들이 가출할 것을 염두에 둔 관음보살의 계획이었는지 좀 해석이 갈리는 구석이 있어요.

그리고 보다보면 손오공의 성격도 매우 인간미 있음을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여기서 많이 등장하는데, 은각대왕의 태산압정에 깔려 통곡하면서 삼장은 자기 말 안 들었으니 죽어도 싸지만 동생들은 뭔 죄로 같이 죽냐며 스승을 탓하며 화를 내다가도 황금승을 빼앗으러 요괴 어머니의 집을 찾아갔을 때 삼장이 붙잡힌 게 떠올라 펑펑 울기도 하고, 후반 오계국 편에선 태자를 설득하려고 입제화라고 이름 붙인 아기 중으로 변신해선 아장아장 대웅전 안을 돌아다니거나 잠에 든 삼장을 깨우기 위해 그의 대머리를 만지작거린다거나 왕의 시신을 구하러 왕의 정원에 들렀을 땐 정원이 폐허로 방치된 것에 충격을 받아 팔짝팔짝 뛰며 소리를 지르는 등 귀여운 모습도 많이 보여줍니다. 

거기다 틈만 나면 저팔계를 골리며 익살맞은 모습을 보이다가 삼장이 마음이 흔들릴 땐 오히려 스승을 깨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변을 당한 사람으로 변신한 요괴들을 업을 땐 귀찮으니 사람이든 요괴든 중간에 던져버리겠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보이고, 어린 아이로 변신한 홍해아가 손오공에게 업힌 뒤 중신법을 쓰자 분노하여 바위 위에 아이를 패대기쳐 팔다리를 잡아 양쪽으로 찢어버리는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잔혹한 일면도 등장합니다. 보면 서유기 내의 주인공들의 성격은 딱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게 손오공이 특히 그런 구석이 있지만, 저팔계와 사오정 때때로 삼장도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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