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인터넷 문고에서 맘에 드는 책이 없나 찾아보다가 문득 서유기 관련으로 새로운 서적이 나온 것이 없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한번 검색을 해 봤더니 이 『서유기 81난 연구』가 눈에 띄더군요. 하지만 처음 주문한 곳에선 품절이라 뜨길래 영영 못 읽는 걸까 아쉬워하다 더 찾아보니 아직 품절이 아닌 곳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주문을 했고 배송을 받았습니다. 『서유기 81난 연구』의 뒤표지에는 본문에 대한 설명 '서정희 선생이 대만에서 유학할 당시 학위논문으로 제출하였던 「서유기 81난 연구」를 번역한 것'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즉, 한국의 중국문학 전공자분이 중국어로 논문을 쓰신 셈.
그리고 추가적인 설명으로 서유기 비평 중 '기존에 없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기에 당시 대만 학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저도 서유기 팬이지만 언제나 손오공의 시점으로 서유기를 해석하고 있었고, 제가 접한 서유기 서적 또한 '손오공'을 중심으로 두고 서유기를 재해석한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 이『서유기 81난 연구』는 손오공이 아닌 삼장법사를 중심으로 서유기의 고난을 연구하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으레 서유기를 읽으면서 손오공의 모험기에 삼장법사는 손오공의 발목을 잡지만 사건을 만들어서 모험을 진행하게 만드는 -역사 속 인물인 삼장법사에게서 이름만 따왔다 싶을 정도로- 트러블 메이커로서만 존재한다는 폭 좁은 관점을 벗어나게 해 주는 책이었다고 할까요?
서유기라는 장편소설을 일종의 심리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서적은 『서유기 고전의 부활』에서 네 명의 주인공들을 하나의 구도자로 그들의 심리적, 성격적인 특성이 한 구도자의 장단점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유기 81난 연구』에서도 비슷한 관점이 등장하면서 동시에 더 나아가 역사 속 삼장법사의 일대기와 부합할 만한 해석이 돋보이는데 서유기 소설 속의 81난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목적(취경)을 향해가는 삼장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인 갈등과 고뇌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것을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석할 경우 실제 역사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요괴나 신선 출신인 제자도 없이 신령한 도움 없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십여 년 서천행을 견뎌야 했던 인간 삼장법사가 마음속에서 품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번뇌를 극복하는 과정을 비유할 수도 있겠다고요.
또한 서유기의 특징 중 하나인 풍자적인 측면에서조차 좀 더 상세한 해석이 들어가 일반적으로 요괴와 도적의 횡포, 삼장의 육신을 노린 요괴들의 행태는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 연관 지어 권력자들의 횡포 측면이 아닌 인간이 가진 적나라한 욕망 - 식욕, 색욕, 불로장생에 대한 갈망 -을 상징하며 고난의 중심에 있는 요괴들의 구성 요소조차 천상형이든 지상형이든 그 요소가 각각 다르나 욕망 추구라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보이며, 삼장법사가 고난을 만나는 계기 또한 요괴들의 일방적인 시비만이 아닌, 인간들끼리의 갈등, 취경단인 주인공들 일행 사이의 갈등, 또는 삼장 내면의 갈등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 이것은 곧 삼장과 삼장을 둘러싼 세계의 갈등이기도 하면서 그것을 극복해가는 서유기 소설 속의 과정은 삼장이 욕망과 분노, 공포를 극복하는 '마음 닦음'의 과정이라고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민폐 꼰대 소리 듣는 삼장법사에게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취할 수 있겠지만 작중 묘사되는 삼장의 단점 - 쉽게 공포에 질리고 눈물을 흘리는 유약함, 나쁜 놈들에게 차별 없이 베푸는 과잉된 동정심,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손오공)을 쳐 내고 거짓말에는 쉽게 넘거나는 무분별함, 말로는 불교의 진리를 외우면서도 그 의미를 정작 체득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현실에서조차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아 그럼에도 서천행을 지키는 결연한 의지라는 장점이 있음에도 삼장법사의 '캐릭터' 자체에는 매력을 못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싶은 부분. 그도 그럴 것이 삼장의 옆에는 사람들이 매력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손오공'이라는 또 다른 주인공이 버티고 있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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