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는 그야말로 하루만에 읽게 되는 책입니다. 제가 단순 여러번 읽어서 내용을 다 알기 때문이 아니라 서유기의 내용 자체가 몰입도가 높고 에피소드가 각양각색이라 재미있기 때문에 맨 처음 소설을 접했을 때도 이랬던 기억이 나요. 3권을 읽을 때면 언제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오정이 언제 등장하느냐를 고대하면서 읽게 됩니다. 그래서 황풍령 황풍대왕 - 담비 요괴편은 마치 가볍게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읽게 되는데요. 옥룡을 제압할 때는 관음보살이 직접 행차한 반면 유사하를 지나다 막힌 오공일행이 남해에 찾아갔을 때 목차가 대신 나타나 사오정에게 사정을 설명하여 제자로 귀의시키고, 조랑박을 건내 거위 깃털 하나도 뜨지 못하는 유사하를 건너게 합니다. 여기서 사오정에게 이름이 하나 더 생기는데 소설의 묘사에 따르면 그에게 참된 화상의 모습이 있어서 '사화상'이라 삼장이 이름을 더해주지요. 다만 용왕자 같은 경우는 백마로 칭해질 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다만 소설상에서 어린 용왕, 혹은 젊은 용왕으로 지칭되지요.
따지고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가 아닙니다. 삼장법사는 어릴 때 스승이 붙여준 이름 강류에, 법명은 현장으로 거기에 불경을 얻으러 떠나면서 통달의 의미로 삼장이란 이름이 더해졌고, 손오공은 스승 수보리조사가 준 이름 손오공에 거기에 작은 덩치가 어린 행자같다고 하여 손행자라는 이름을 삼장이 붙여주지요. 소설상에선 손오공의 이름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인데 요괴들은 정체를 파악하고 필마온으로 모욕의 의미로 불러대고 보통 감탄의 뜻이나 찬양의 의미로 소설상에서 멋진 미후왕 혹은 과거 오공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제천대성이란 명칭을 쓰기도 합니다. 저팔계는 전생엔 천상의 수군을 다스리던 천봉원수로, 돼지의 태로 환생했다고 성은 저씨에 스스로 강렵이란 이름을 붙인 뒤 나중에 관음보살에게 오능이란 법명을 받습니다. 거기에다가 불교에서 금지하는 8가지 채소를 먹지 않는다는 의미로 팔계란 이름을 삼장이 더해주고요. 사오정은 전생에 옥황상제를 호위하던 권렴대장이었고 후에 요괴로 떨어진 뒤 관음보살을 만나 유사하에 사자를 성씨로 하고 오정이란 법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삼장이 화상의 모습이 진심으로 서려있다하여 사화상이란 이름을 얻지요. 이번 3권에서 태반 사화상이란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사오정까지 받아들이고 난 뒤 이들이 겪는 것은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여산노모가 과부에 세 딸로 변신하여 그들을 시험하는 내용인데 이 에피소드의 개그성은 누누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지역명인데 남섬부주에 속하는 당나라에서 삼장이 출발하여 서쪽으로 떠나는 이야기니까 관음보살 일행이 삼장을 시험하는 곳은 서쪽 서우하주입니다. 즉 저팔계와 사오정도 서쪽에 위치한 곳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머물렀으므로 서우하주 출생이지요. 손오공은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왕이란 설명이 제법 많이 설명되는 편입니다. 그리고 옥룡왕자같은 경우는 서해용왕인 오윤[고전소설인지라 표기가 동해에서 서해로 왔다가갔다하는 경우는 있지만 오윤은 서해용왕이 확실한 편으로 보여짐]의 아들이므로 그의 태생은 서해. 그런고로 서쪽에 고향을 둔 인물이 셋인 셈입니다. 반면에 『서유기』 내에 설정 속 북구로주에 해당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중국 입장에서 북쪽은 너무 멀리 있거나 파악이 불가능한 편이었던지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지역에 비해 북쪽은 워낙 척박하게 그려지는지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서유기』에서 감탄할 만한 것은 내용도 내용이고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소설 속 네 사람의 입담이 물흐르듯 흘러가기 때문일까요? 삼장이 뭐라고 한탄하고 울면 그것을 오공이 어른스럽게 어르기도 하고, 팔계가 배고프다 힘들다 투덜거리면 좀 철들라는 듯 오공이 핀잔을 주고 오정은 대개 얌전히 있지만 우스개처럼 타이르기도 하며, 저팔계와 오공이 손발이 맞으면 왠지 삼장이 뒷담 대상이 되기도 하고[늙다리 화상이란 호칭이 이번 3권에서 제법 나와요], 이 둘이 틀어지면 꽤나 심각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중간에서 담담하게 사오정이 타이르는 등 내용의 태반은 이들이 수다가 많이 차지하는 편입니다. 고전소설이지만 넷의 캐릭터가 각양각색하는 데다가 이들의 노는 모습은 어찌 보면 친한 사람들끼리 더 거칠게 노는 것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어요. 아닌척하면서도 서로 다 챙겨주고 있달까요?
거기다 오공의 성격은 능글맞고 입담도 강한 편이라 자기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데, 진원대선의 오장관에서 소동을 부려 붙잡혀 온 뒤 고문을 당할 때도 오공은 술법덕에 태연하게 구는데다가 삼장은 못견딜거라고 자신이 매를 다 맞겠다는 둥 하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진원대선을 감탄시켜 나중에 의형제가 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서유기』에서 누군가 맞는 걸 보느니 내가 죽겠다라는 성격은 오히려 사오정이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삼장에 대한 헌신이 세 제자와 백마 모두 베이스로 깔려 있지만-팔계는 조금 덜한편- 사오정은 손오공이 적에게 붙들려 맞게 되었을 때 자기를 대신 때리라 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이번 3권 황포요괴편에서 백화수 공주가 요괴에게 죽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그이기도 합니다. 사오정은 가장 비중이 적긴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빛을 보는 경향이 있어요. 거기다 이번 손오공이 파문당할 때도 사오정은 착하니까 대신 삼장을 잘 지키라하는 등 말을 하는 걸 보면 왠지 팔계에 비해 오공은 오정에 유한 편입니다.
참고로 이 3권에서 삼장이 왜 요괴들의 노림을 받게 되었나가 설명이 되는데 본래 날때부터 수행한 몸으로 진원대선의 집에서 사건이 다 수습된 후 초환단인 인삼과를 먹은 덕택에 불로장생하게 되었으며 이 영향이 요괴들에게 끼치므로 그렇게 된 것. 손오공을 파문시킨 결정적인 원인이 된 백골요괴가 그를 노릴 때 설명이 되는편입니다. 반면 다음에 등장하는 황포요괴[소설상의 명칭은 황포노괴]는 삼장의 고기에 큰 눈독을 들이는 편이 아닌데 처음엔 자기 소굴로 들어왔으니 잡아먹으려 들다가도 아내의 부탁에 순순히 풀어주는 등 크게 삼장의 인육에 집착을 보이지 않습니다. 백골부인이 삼장을 세번이나 노렸다가 끔살당하여 시시한 결말을 낸 것에 비하면 놀라울 수준으로 그 실력도 저팔계와 사오정이 스무명이 있어도 이기지 못한다는 묘사까지 나오는데요. 아무래도 이것은 그의 정체가 본래 하늘나라의 성관 - 즉 선인이었기 때문인 듯 싶어요. 물론 요괴모습으로 환생했을 때는 궁녀를 산채로 잡아먹는 등 난폭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우마왕말고도 삼장에게 그닥 눈독을 들이지 않으면서 나중에 아예 아군으로 등장하여 여러모로 인상을 깊게 남기는 요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화수공주와의 관계는 암만 봐도 폭력남편과 매맞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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