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교보문고에서 주문한 소설 『서유기』 관련 서적인 『서유기, 텍스트에서 문화콘텐츠까지』를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이 책을 굳이 구매한 뒤 시간을 들여 읽은 이유는 일단 『서유기』 관련 인문서적이 생각보다 국내에 많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언제 절판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왕 기회가 될 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서유기』는 다른 사대기서인 『삼국지』와 비교하면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마 소설, 말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운 장르라는 점 때문에 아동용 모험소설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여 『서유기』 자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얕은 부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이 책 『서유기, 텍스트에서 문화콘텐츠까지』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편견을 지적하기도 하고요. 책에선 사대기서인 『서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소설로 정립되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철학적인 요소가 섞여 들어갔는지 그리고 현대 한중일 사회에선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각색되었는지 자세하게 살피고 있는데, 『서유기』의 인기가 『삼국지』에 비하면 한국에서 적은 편이긴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점이 적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 책의 가장 장점은 원전 『서유기』를 읽는 사람들마저 외면하기 쉬운 다른 주인공들 - 사오정과 삼장법사의 개성과 그 이미지 변화에 대해 상세하게 고찰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이 『서유기, 텍스트에서 문화콘텐츠까지』의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간단하게 요약하면,
1. 『서유기』에서 드러나는 계급사회를 향한 뒤집기와 풍자, 그리고 유교 사회에서 억눌렸던 욕망의 긍정.
2. 『서유기』에서 은밀하게 숨어있는 중국 역사 속에서 빈번했던 식인 문화의 파편과 명말의 사상 및 혼란상.
3. 『서유기』의 등장인물 '사오정'과 '삼장법사'가 현대의 한중일에서 각색된 양상과 변용 여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중 1번 '손오공'이라는 인물을 통해 신분제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명 당대의 지도자 계층의 타락을 비꼬려 했다는 건 원전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번 사항은 소설을 면밀하게 보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까지 파악하여 중국의 역사적 배경, 소설이 탄생한 배경과 연관 지어야 그동안 미심쩍거나 의심스러운 부분을 밝힐 수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 원전 『서유기』에서 요괴들이 자행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사건이 왜 그리 자주 등장하는지, 왜 삼장이 자주 요괴들에게 먹이로 노려지는지, 손오공 일행이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아이들을 구하는 일을 자주 맡게 되는지 그 밑에 깔린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얼핏 보아서는 『서유기』가 손오공이라는 원숭이 요괴지만 정의롭고 다혈질적이면서 '악'을 용서하지 못하는 영웅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더 어둡고 끔찍한 면모가 스며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원전 『서유기』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식인 사건은 소설이 탄생한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벌어졌던 식인사건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명말 혼란기 변질된 도교문화의 유행으로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식인을 벌인 사건들을 비판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식인을 통해서라도 '영생'의 꿈을 이루려고 한 중국인들의 사고관을 고스란히 노출하면서 그 욕망을 일부분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주인공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이 오장관을 지나면서 어린아이를 닮은 열매 '인삼과'를 먹는 에피소드를 통해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는데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열매를 굳이 어린아이 형태로 만든 것부터가 기괴한 일인데 이건 주인공들이 식인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어린아이' 닮은 '열매'를 먹는 것으로 얼렁뚱땅 둘러댄 것에 가깝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소설 『서유기』가 탄생한 명말은 사회적 혼란이 심각하여 변질된 도교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진 감이 있었고, 고위층이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식인을 즐긴 사례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서유기』는 삼장법사와 신선 일행들이 인삼과를 먹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고귀한 계층도 결국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식인을 하는 위선자들이라고 비판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소설 『서유기』를 읽다 보면 한국인 입장에서 거슬릴만한 요소로, 주인공 삼장법사 일행이 자신들을 항상 '대당'에서 온 사자들이라고 자부하며 외국에서 대접을 받거나 영웅 노릇을 한다는 점인데 노골적이지만 않지만 『서유기』도 지나치게 중국 중심적이며 자신들 나라를 치켜세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오계국 에피소드에서 손오공은 왕궁을 차지한 요괴를 도발하기 위해 (동승신주 오래국 출신이면서) 스승과 같은 당나라 출신임을 어필하며 왕궁에서 소란을 부렸을 정도인데 『서유기』에서 은근하게 나타나는 중국 중심적인 사고방식 또한 안팎으로 위태로웠던 명말의 혼란기, 원과 청 사이에 끼어 존재했지만 국력은 두 나라에 비교하면 부족했던 명나라의 콤플렉스를 채워주기 위한 대리만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요.
어떤 소설이든 그 시대나 작가가 살아온 배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서유기』 역시 재미있지만 단순한 풍자소설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을 사랑하고 좋아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나 미심쩍던 부분을 이 책에서 시원하게 밝혀주고 있기도 했고요. 책의 마지막 부분 '사오정'과 '삼장법사'의 재해석과 변용은 원전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한계(존재감 없음/무능함)와 실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그들만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나라마다 캐릭터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받아들여졌는지 자세하게 살피고 있는데요. 특히 사오정을 제일 좋아하는 입장에선 이런 재해석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좀 거슬리는 점은 유달리 일본에서 '삼장법사'의 연약한 성격을 들어 '여성화'를 자주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서유기』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더라도 원전의 특성을 지키는 편이 강하다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하여 다양한 이미지가 등장할 수 있었는데요. 삼장법사의 중성화된 이미지는 일본에서 강한 편이며 이는 부족한 여성의 캐릭터를 주연으로 채워 넣기 위한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에 대한 성편견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강하고 해결사적인 면모가 강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그대로 두면서, 눈물 많고 의존적이며 무능하고 보호만 받는 삼장법사만 여성으로 바꾸는 행태는 숱한 창작물이 드러내는 편협한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면모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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