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클리셰를 여러모로 뒤집은 드라마 :『구경이』분석

최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구경이』를 다시 정주행 중입니다. 원래 드라마가 재미있기도 했고, 본방 방영 당시 놓쳤던 부분을 알아볼 겸 보기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는 기존 드라마 - 범죄 수사 장르물의 클리셰를 간단하게 바꾼 것만으로도 굉장히 참신함과 독특함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구경이』의 등장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혹시나 해서 첨부하는 건데, 드라마 스포일러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주인공의 설정과 특징 

과거에는 업계에서 유능한 인물, 현재는 여러 상황으로 삶에 치여 폐인이 된 인간의 성별 반전형.

일단 주인공 '구경이'는 과거에는 경찰이었으며 상당히 유능했던 편이라 후배인 제희의 존경과 애정을 받는 인물이지만,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여파로 교사인 남편이 자살한 뒤 폐인이 된 인물입니다. 현재의 직업은 경찰에서 은퇴하고 보험조사관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사람이 게을러서 그렇지, 보험 사기꾼 잡는 일도 잘하는 편임.

작중에선 구경이가 당시 남편을 의심하여 그가 범인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건을 수사했다고도 오해를 받지만(빌런 이경의 주장), 실제로는 남편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게 종종 암시됩니다.

이건 '영화 초반에 죽는 주인공 부인 특징. gif'이라고 돌아다니는 밈인데, 보통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 등지에서 자주 나오는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짤이 웃긴 것과 별개로) 유능한 인물이 현재 폐인이 된 계기가 사랑하는 여성의 죽음 - 사건과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 인 경우가 많으며, 이때 죽은 인물은 아련한 과거 회상으로 등장하여 주인공을 힐링시키거나 혹은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드라마 속에서도 구경이의 남편은 종종 구경이에게 생전 다정했던 모습으로 나타나 조급해하는 그녀에게 충고를 하고 사라지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해요. 

 
2. 주인공의 조력자 첫 번째 유형  

주인공의 끈끈한 인연이자 의지가 되는 대상, 때로는 주인공이 부리는 민폐짓의 희생자.

구경이의 후배이자, 그녀를 꾸준히 챙겨주는 제희가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합니다. 

보통 남성 주인공이 유능한 폐인으로 등장할 경우, 그의 친구나 후배에 해당하는 '남성' 캐릭터(드물게 여성 캐릭터도 존재)가 이런 클리셰에 해당하며 남성 주인공일 경우  현실에 적응 못하고 붕 떠 있는 주인공을 다잡아주는 브로맨스 장면을 연출하거나, 비어있는 부인의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일도 번번이 생깁니다.

작중 제희는 폐인 생활을 하고 있는 구경이가 원래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는 데다, 그녀의 좌절을 이해하는 인물. 구경이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덤터기로 고생을 하기도 하고요. 또 용국장과의 커넥션을 알아챈  빌런 케이에게 위협을 당하는 등 위험한 일을 많이 겪는 인물이기도 해요. 중반에 죽는 것처럼 페이크 연출을 하는 바람에 보는 시청자까지 철렁하게 만드는 회차도 있었고요.

하지만 드라마 중반 구경이가 또 다른 흑막인 용국장의 함정에 빠져 위험해졌을 때 그녀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해당 회차에서 구경이를 현실로 끌고 오는 인물이 죽은 남편이 아닌 제희라는 게 특징.

 
3. 주인공의 조력자 두 번째 유형 

주인공에게 헌신을 퍼붓는, 비밀이 많은 인물이자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 

남성이 주인공일 경우 여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작위적인 서비스신이나 러브라인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작중에서 구경이와 같은 게임을 하는 길드 소속인 '산타'가 그런 역할입니다. 하지만  『구경이』  드라마 자체는 멜로 요소가 배제된 작품이라 산타와 구경이 사이의 감정은 남녀의 그것으로 해석하기는 힘들고, 산타가 제공하는 서비스신은 개그에 가까운 편이에요.

보통 이런 비밀이 많은 캐릭터들인 경우, 주인공에게 과거 도움을 받아 그에게 연심을 품었다거나 은혜를 갚으려 한다거나 하는 설정이 있으며 때로는 전통적인 히로인처럼 빌런에게 납치되는 경우도 많은 편입니다. 

'산타'인 경우 구경이의 남편이 근무했던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암시가 있기는 하지만 그 과거와 구경이를 돕는 이유에 대해선 드라마가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겨 클리셰를 약간 비튼 편입니다.
 

4. 주인공의 대립자 - 빌런의 첫 번째 유형

주인공이 잡아야 할 대상이자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물, 동시에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요구하는 대상.

작중에서 살인을 계획하며, 악인을 죽이는 것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한다고 믿는 송이경, 일명 '케이'가 이에 해당합니다.

보통 범죄수사물일 경우 남자 형사(혹은 탐정)가 주인공이라면 대립자 역시 남성, 혹은 여성 수사관이 주인공일 경우에도 빌런은 남성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경이』 는 여성 주인공이 쫓는 빌런은 여성 범죄자라는 특이한 구조를 보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수사물에서 남성 주인공의 대립자 남성 빌런들은 자신의 범죄성이나 폭력성, 반사회성을 이해해 줄 인물로 주인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주인공의 첫 번째 조력자보다 더 짙은 브로맨스 연출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시청자나 팬덤에게 더 먹히는 케이스도 종종 있는데, 『구경이』의 여성 빌런인 케이 역시 구경이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이해를 요구하기도 하는데요.

물론 위의 사진은 페이크고, 구경이는 송이경보다 산전수전 더 겪은 인물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물이라 오히려 케이를 꾸짖는 전개로 가며, 케이는 사회적인 처벌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중 케미는 구경이와 동료인 제희 쪽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케이는 오히려 자기 동료인 건욱이랑 케미가 좋은 편이었고요. (럽라 ㄴㄴ인게 건욱이는 이미 짝이 있음) 물론 이 둘도 작중에서 서로 뒤통수치는 게 연속이었지만.

 
5.  주인공의 대립자 - 빌런의 두 번째 유형

권력을 쥐고 정체를 숨긴 상태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관찰하거나, 조종하여 이득을 취하는 흑막.

드라마 속 용국장이 이에 해당하는데, 보통 용국장 같은 캐릭터는 그 성별이 남성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여성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꼭 고정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사회적으로 권력을 쥐었다 하면 남성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여기서 용국장은 여성이면서 사회적인 입지가 가장 높은 편이고 구경이를 비롯, 구경이의 동료들 거기다 빌런인 케이까지 자기 수족으로 이용해먹으려 하는 대범한 인물로 그려져요.

또한 케이 못지않게 냉혹하면서 자기 아들들에겐 상당히 헌신적인 모습을 - 둘째 아들은 좀 애증; - 보여주는 다면적인 캐릭터입니다.

용국장은 구경이 일행은 은밀하게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케이를 잡기 위해, 케이는 살인 방식이 뛰어나므로 자기 큰 아들의 발목을 잡는 자들을 없애기 위한 용도로 쓰려고 합니다. 용국장의 휘하에 있는 인물(김부장)을 보면 이미 케이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을 부리면서 권력을 사수했겠다 싶은 암시도 있었고요.

물론 케이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고 후에 크게 사고를 치긴 합니다만... 용국장도 그에 만만치 않게 일을 벌이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클라이맥스에서 용국장의 총격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권력을 가진 야망가 여성이 다 쓸어버리겠다면서 총을 쏘는 장면은 실은 흔한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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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경이』는 이렇게 기존 범죄수사물의 흔한 성 역할을 뒤집은 점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재미가 기존 범죄수사물의 성별을 역전시켰다는 데서 오는 것만은 아니며, 기존 클리셰를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그것을 다시 뒤집는 묘미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의 주제나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 그리고 결말과 마지막 화의 특별출연까지 흥미로운 점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어요.

https://www.youtube.com/shorts/4fGg7TMMg8E

 
* 포스트 원본 출처 : https://blog.naver.com/naninkan/222706123591

성별 클리셰를 여러모로 뒤집은 드라마 : <구경이>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