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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속 손오공의 첫 번째 파문 장면과 두 번째 파문 장면 비교

by 01사금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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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전개에서 중요한 이벤트로 등장하는 사건은 다름 아닌 삼장법사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손오공이 파문당하는 사건입니다.

손오공이 첫 번째로 파문당하는 사건은 100회 본 서유기 제27회 '시마(屍魔)는 당나라 삼장을 세 차례나 농락하고, 성승(聖僧)은 미후왕의 처사를 미워하여 쫓아내다(제목 출처 : 문학과 지성사, 『서유기』 3권)'에 해당하는 내용. 

시체에 깃들어 태어난 요괴 백골정(白骨精)은 진원대선의 인삼과를 먹은 삼장법사의 인육을 노려 세 차례나 인간 흉내를 내며 접근을 시도하고, 그때마다 요괴의 정체를 눈치챈 오공에 의해 저지됩니다. 앞서 두 번이나 간발의 차로 요괴를 놓친 오공은 마지막에 가서 요괴를 붙잡아 여의봉으로 때려눕히는데 이것을 인간을 죽이는 것이라 삼장에게 오해를 받아 파문을 당하게 되는 사건.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오공이 없어진 삼장 일행은 다음 회차에 등장하는 황포(黃袍)요괴에게 농락당하게 됩니다.


 

노인으로 변신한 백골 요괴를 때려잡으려는 손오공과 그를 만류하는 삼장법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것은 죽은 사람의 시체가 영기를 얻어서 요사스러운 괴물이 된 강시(僵屍)입니다. 이 강시 요괴는 산악 지대를 제 소굴로 삼고 신통력을 부려 지나가는 행인을 홀려서 못 살게 굴다가, 방금 제가 때려죽여 결국 본상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 보십쇼! 등줄기 뼈에 이렇게 글씨가 한 줄 새겨져 있지 않습니까?"

삼장이 다가가서 굽어보았더니, 과연 척추뼈에 '백골부인(白骨夫人)'이란 넉 자가 씌어 있다. 그는 맏제자의 말을 겨우 믿었다. 하지만 그 곁에서 저팔계가 여전히 주둥아리를 놀려 손행자를 모함했다.

"사부님, 이 원숭이의 손매가 얼마나 맵고 철봉이 얼마나 사나운 흉기인지 모르십니까. 멀쩡한 사람을 때려죽여놓고 사부님이 '긴고주'를 외우실까 두려운 나머지, 일부러 이런 모양으로 바꿔치기해서 사부님의 눈을 가렸다니까요!"

당나라 스님은 과연 귀가 여려도 한참 여린 사람이다. 바보 멍텅구리의 심술 맞은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그는 손행자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또다시 중얼중얼 '긴고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내용 출처, 문학과 지성사, 『서유기』 3권  p.232)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요괴 백골부인은 손오공을 일행에서 떨어뜨린 계기를 제공한 결정적인 인물로, 오공에 비하면 강하지도 않고 비중도 다른 요괴에 비하면 큰 편은 아니나, 그 행적과 결과가 독특하기 때문인지 후에 나오는 서유기 매체에서 여러모로 활용되는 캐릭터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영화 '몽키킹 2 : 서유기 여정의 시작'에서 배우 공리가 연기한 빌런 백골정이 해당.

'몽키킹2:서유기 여정의 시작'의 요괴 백골정. 이미지 출처 Imdb.

이 백골정(백골부인)이 삼장에게 처음 접근을 시도할 때 남편에게 점심밥을 가져다주는 미녀로 변신하여 일행을 속이려 드는데, 요괴를 알아볼 수 있는 화안금정(火眼金睛)을 지닌 손오공은 요괴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바로 조치를 취했지만, 그런 안목이 없는 삼장은 오공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공 때문에 미녀의 점심밥을 못 얻어먹게 되었다고 믿은 저팔계의 짧은 머리와 심술로 인해 사건이 악화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손오공은 잘못이 없고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심화시킨 것은 어리석은 저팔계와 저팔계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삼장에게 책임이 전적으로 있으며, 막내인 사오정이나 용마 같은 경우는 이 상황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후에 결국 앙금이 풀려 손오공이 삼장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은 해결이 됩니다만.

손오공이 두 번째 파문당하는 사건은 100회 본 서유기 제56화 '손행자는 미쳐 날뛰어 산적 떼를 때려죽이고, 삼장 법사는 미혹에 빠져 심원을 추방하다'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첫 번째 파문 사건과 비교하면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경향이 있습니다.

삼장 일행이 여인들만 사는 서량녀국에서 전갈 요괴의 마수를 물리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와중 삼장이 도적 떼에게 위협을 당하게 되고 오공이 삼장을 구하기 위해 도적들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삼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요괴가 아닌 사람을 해친 것에 삼장이 분노하여 오공을 꾸짖자 이에 오공이 반발하고 화를 내며 말싸움을 벌이고 거기에 동생들까지 말려들면서 일행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삼장 일행은 한 노부부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집의 아들이 바로 삼장 일행을 습격한 도적단의 일원이었던 것. 거기다 그 도적단이 죽은 일행의 복수를 한답시고 삼장 일행을 다시 습격하려 하자 노부부는 삼장 일행에게 미리 언질을 주어 자리를 피하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도적단이 포기하지 않고 삼장 일행을 쫓아오자 오공은 다시 도적단을 때려죽이고 마는데요.


 
말위의 삼장법사는 눈앞에서 그 숱한 사람들이 무참하게 얻어맞아 거꾸러지는 것을 보자, 혼비백산하다 못해 말고삐를 다 풀어놓고 정신없이 서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저팔계와 사화상 역시 좌우 등장에 바싹 붙어선 채 그곳을 떠나 달음박질쳤다.

(중략)

"사부님, 보십쇼! 이게 양 노인의 불효자식입니다! 하하!! 이 손 선생에게 목이 달아나고 말았죠!"

눈앞에 번쩍 들어 보이는 머리통, 끔찍스럽게도 피가 뚝뚝 듣는 사람의 머리통을 보자, 삼장은 대경실색을 하다못해 기어이 안장 위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 몹쓸 놈의 원숭이 녀석아! 나를 놀라 죽게 만들 셈이냐. 어서 처리 치워라! 냉큼 치우지 못할까!"

땅바닥에 주저앉은 스승의 앞을 저팔계가 썩 나서서 가리었다. 그리고 그 머리통을 툭 걷어차 길 곁으로 굴려놓더니 쇠스랑으로 흙더미를 들쑤셔서 덮어버렸다.

"사부님 일어나십쇼."

사화상이 짐을 내려놓고 스승을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삼장은 땅바닥에 앉은 채로 정신을 가다듬고 중얼중얼 '긴고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내용 출처, 문학과 지성사, 『서유기』6권 p.219~220)
 


 
손오공이 사람을 죽이는 내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갓 오행산에서 풀려난 뒤 삼장을 지킨답시고, 자신들에게 덤벼든 도적단을 때려죽인 사건이 이미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유기 속에서도 살인을 엄격하게 규정지으며, 관세음보살 같은 경우 요괴를 죽이는 것도 만류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해선 더욱 금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무래도 고전소설 속에서조차 인간이 더 중심적이기 때문에 나온 경향이라 보이지만.

여기서 주시해야 할 것은 비록 앞서의 말다툼 때문에 서로 앙금이 생기긴 했지만 불효자를 잡는답시고 잔인한 행동을 한 것은 손오공으로 심지어 그것을 스승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면서 파문당할 계기를 알아서 제공했다는 것. 첫 번째 파문 사건에서 오공을 모함한 팔계는 이 두 번째 사건에선 오히려 스승을 잔인한 장면에서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했을 뿐으로 손오공의 행실을 문제 삼지 않았고, 이것은 어떤 사건에서든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는 사오정도 마찬가지로 굳이 두 동생이 나서든 나서지 않든 파문당할 이유는 적절하게 제공된 셈이라는 거죠.

해당 장면에서 손오공의 행동이 잔인하게 여겨져 어떤 실드도 통하지 않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2011년도에 제작된 드라마 '장기중판 新서유기'에서는 오공이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닌 앞서 싸운 전갈요괴의 도마독이 체내에 남아있어 오공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른 것을 묘사합니다. 이는 그만큼 해당 장면이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용납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작의 여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이고요. 

종종 서유기 속에서 손오공의 이런 잔인한 행동이 등장하는 것은 손오공이 오래 수행을 해서 신선이 되었고, 또한 긴고아 테로 그 행동을 제압하고 있으면서도 본래 가진 요괴로서의 특성이나 야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관계가 오래되었다고 해도 쉽게 해소될 수 없는 차이가 있고 그것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그들의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교롭게도 손오공이 두 번째 파문당하는 사건 이후 등장하는 요괴가 손오공을 흉내 내는 육이미후라는 것을 본다면 삼장법사의 대립에서 이어지는 손오공과 가짜 손오공의 대립은 어떤 의미에서 손오공이 가진 그림자를 해소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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