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지성사판 '서유기' 부록의 해설본 참조 (검은 글자 해설본 참조 / 컬러 글자 개인 해석)
첫 번째 삼장 법사
현장스님은 불굴의 의지로 국가 금령을 어겨가며 황량한 사막과 험산준령을 넘어 구사일생으로 이국 타향 인도에 들어가 17년 동안 부처님의 법을 구하고 귀중한 경전을 구해 돌아온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로 전해진다. 하지만 7백 년이 지나 등장한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당나라 스님 삼장법사의 이미지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다른데 일단 그는 세상물정도 모르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고루한 스님으로 묘사되고 있다. 담보가 작은 겁쟁이라서 제자들이 사고를 칠까 봐 늘 두려워하고, 요괴 마귀들에게 붙잡힐 때마다 비굴하게 무릎 꿇고 애걸하는 등 속세의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온갖 결함들을 특징적으로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숱한 결점의 소유자이면서도 당나라 스님은 경건한 불교 신도의 특징만큼은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죽음의 위험을 무릎쓰면서 물러서지 않는 굳센 믿음, 천축 영취산에 올라 부처님을 뵙겠다는 명확한 목적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 부귀영화의 유혹에도 굽히지 않는 모범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납고 고집 센 제자들을 훈계하며 단속하고 초지일관으로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게 늘 격려한다. 그리하여 이런 못난 제자들을 데리고 험난한 장애와 싸워 이긴 끝에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 참고로 완역본 서유기의 자세한 해설에 따르면 삼장법사의 샌님 이미지는 당대 지식인 계층의 위선적 태도를 풍자하면서 동시에 소설적 완성도를 위해 단순한 신성한 화신의 이미지를 벗어나 인간적인 결점을 부여하여 입체적인 성격을 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글도 있습니다. 통천하 에피소드나 제새국 에피소드처럼 약자들이 희생당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편을 들어주는 선량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 문제 해결에 있어선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비구국 에피소드에서 무능한 왕이 도사의 꾀임에 넘어가 아이들의 심장을 달여먹으려 할 때 유교의 교리 악용을 비판하며 사람을 아끼고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바른 소리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심장이 뺏길 상황이 되자 벌벌 떠는 등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때론 고집을 부려 요괴의 속임수라는 것을 모른채 손오공을 파문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시기에는 그에게 의지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요. 신승이란 점을 제외하면 이런 성격은 현실에 있을 법도 한 특징이기도 하면서 소설 속 사고들의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캐릭터의 입체성과 인간미를 주기 위해 부여한 결점이 현대적인 시선 - 완역본 해설판에 의하면 현대만이 아니라 전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민폐주인공 내지 샌님으로 여겨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두 번째 제천대성 손오공
손오공은 고대 중국설화와 인도설화의 혼혈종으로 그 원형은 중국의 원숭이 토템신앙과 원숭이 ‘무지기’ 설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상고시대 위대한 인물이 신령한 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과 도교에서 신선술을 익힌 악한 원숭이 악령의 설화가 보태어진 격. 그리고 2500년 전 상고시대 인도 최고의 서사시 「라마야나」의 원숭이 대왕 하누만 설화가 10세기 경 중국 당나라 말엽에 민간에 전래되어 손오공의 초기 이미지에 합쳐져 이야기꾼의 대본과 희곡에 등장하는 ‘흰 옷 입은 원숭이 행자’의 모델로 등장하게 된다.
원숭이 임금 손오공은 원나라 때 당나라 스님의 행적을 노래하는 희곡과 서사체 산문에선 온갖 행패를 일삼는 사악한 정령으로 묘사되나 장편소설 『서유기』에선 도교와 불교의 신화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운 품격을 부여하여 세상을 뒤덮는 영웅적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때부터 손오공은 순수한 대자연의 아들에서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
손오공은 중세시대의 신화나 종교의 틀 속에 억압된 인간의 자연스러운 재능과 총명함을 드러내며 만능의 이미지로 나아가게 된다. 현실에 불만을 느껴 불로장생의 도를 배우고자 바다를 건너는 그의 모습은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저자가 당시 봉건 세력의 속박을 깨뜨리고자 하는 신흥 시민사회의 갈망과 새롭고 자유스러운 발전을 획득하려는 진취적 욕구를 대신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명부에서 생사부의 이름을 지우는 행위는 심령 해방을 부르짖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으며, 천궁을 상대로 대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기존 사회의 삼엄한 위계질서와 유능한 이를 업신여기고 인재를 등용할 줄 모르는 옥황상제의 처사에 반항하는 자유 평등 관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서천까지 가는 길 내내 긴고주의 속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독립적인 지위와 인격을 내세우고, 요괴 마귀들을 만나 싸우며 그들을 철저히 때려 부수는 것은 그야말로 투쟁적인 영웅의 화신이라 할 것이며, 악에 맞서 용전분투하는 기질과 의로운 정신은 한마디로 진취적이면서 동심을 갖춘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4백여 년 전 당시 봉건사회의 억압에 눌려 살아야 했던 저자로서는 이런 참된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하고, 그저 한낱 원숭이와 그런 이미지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한계였다.
*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형의 모습을 원숭이 정령으로 표현한 것은 한계라 하지만 오히려 인간이 아니란 점 때문에 현대에서는 다른 매력으로 와 닿을 수 있는 게 손오공의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원숭이라는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그 초월적인 능력이 납득이 가며, 도리어 손오공의 존재가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게 했다고도 할까요. 그리고 만약 인간이었다면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는 삼장이 아니라 매력적인 손오공이 되어 다른 의미로 손오공이 속박을 받아 서유기의 재미와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도 컸을 거 같습니다.
욕망에 초탈한 손오공의 이런 면모도 본래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전대의 소설에서는 원래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등 난잡하다가 소설 『서유기』 에서 캐릭터가 제대로 잡힌 셈이지요. 다만 완역본의 추가 해설본에 의하면 초기『서유기』에 비치던 손오공의 난폭한 면모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라 100회본 『서유기』에서도 잔상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면 삼장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도적들을 때려잡거나 관음보살이 만류하지 않았다면 요괴들을 잡아 족칠 뻔 하는 등 잔인한 성격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영장류의 습성이 나온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면서도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솔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 도리에 맞는 말을 하고, 삼장의 부탁에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일단 눈에 들어온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으며, 사건이 닥쳤을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유능함과 의로움이 손오공을 한층 더 매력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저팔계
저팔계는 익살맞고 못난 이미지의 소유자로 결함과 약점을 수두룩하게 지닌 복잡한 성격의 인물이다. 손오공의 경우처럼 저팔계도 동물, 인간, 신령의 세 가지 형태가 교묘하게 융합된 인물로 그 근원은 중국 상고시대 두려움을 주었던 거대한 뱀과 야생 멧돼지의 토템 신앙의 대상이다. 사람머리에 돼지 몸, 또는 돼지머리에 사람 몸뚱이를 지닌 형태로 설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겉모습은 멧돼지의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내면은 식탐과 잠꾸러기, 남에게 조소받는 바보스러움과 굼뜬 동작, 스스로 영리한 척 용감한 척 허세를 부리는 집돼지의 추레함을 연상시킨다.
특이하게 저팔계의 이미지는 11세기 송나라 대본이나 12세기 원나라 극본에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서사 산문체 소설이 나오면서 ‘검정 돼지 요정 주팔계(朱八戒)'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명나라의 건국 태조 주원장의 성씨와 같은 것을 기피하여 금색 돼지 장군의 형상으로 나타나다가 끝내 발음이 비슷한 성 ‘저(猪)’가 되어 검정 돼지 정령 ‘저팔계’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며 드디어 소설 『서유기』에서 오공의 형상이 정기를 받아 탄생한 ‘돌원숭이’로 탈바꿈한 것처럼 저팔계 역시 검정 멧돼지 요정에서 은하수 수군 8만을 거느리던 천봉원수의 환생으로 바뀌게 된다.
서유기의 두 주인공 손오공과 저팔계를 비교하면 하나는 원숭이 정령, 하나는 돼지의 정령으로 그 모습과 성격이 대비되는데 손오공이 비쩍 마른 왜소한 몸집에 눈치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 원숭이라면, 저팔계는 거칠고 뚱뚱한 미련퉁이 돼지로 더할 나위 없는 콤비를 이루고 있다. 저팔계가 지닌 특성으로 느긋한 천성과 잠꾸러기 기질, 식탐 속성은 당시 농민들의 심리를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교활하면서도 솔직무던하고 게으르면서도 부지런함, 여색을 좋아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을 탐내지만 큰 의리를 잃지 않는 모습은 우리들 보통 사람의 약점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유능하고 말 잘하고 명분을 중요시하는 손오공이 도시민의 정신을 드러낸다면 거칠고 예에 무디지만 순박하고 현실적인 팔계는 시골 농민의 심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 완역본 『서유기』의 해설에 따르면 중국의 민간신앙 속에서 돼지는 ‘물’을 다스리는 짐승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즉 저팔계가 소설 속에서 은하수 8만 수군을 다스리는 천봉원수가 되었던 것은 이런 신앙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해요. 하지만 하늘의 고귀한 장수가 추태로 인간계로 떨어져 본래의 기품을 잃고 바보짓을 일삼는 것은 우스운 꼴이면서도 약간 연민이 일기도 하는데 이런 점 또한 저팔계의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서유기』내에서 엄청나게 사고를 치고 민폐를 끼치면서도 손오공을 보조하는 역할은 팔계가 하는데 그가 일으키는 말썽은 밉지만 팔계가 소설 속의 사건을 유발함과 동시에 폭소를 안겨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삼장과 비슷하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혹은 일을 더 꼬아 독자가 보기에 매우 얄밉지만 사건을 더 흥미진진하게 진행하는 것도 팔계의 몫입니다.
그렇다고 삼장처럼 마냥 무능한 것은 아니라 할때는 하는 편이며 심지어 궂은 일도 그다지 거부하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선 일종의 개그 캐릭터 포지션을 맡았다고 볼수도 있는데, 나대다가 된통 당하는 우스운 꼴을 겪거나 소설 상의 더러운 꼴은 모두 팔계가 도맡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로 자모하 강물을 마시고 잉태한 뒤 낙태천 물을 마시고 똥오줌을 싸버리거나 칠절산의 희시동 똥길을 거대한 돼지로 변신하여 치우는 등의 에피소드가 있지요.
소설 『서유기』속의 사오정은 앞의 둘에 비교하면 이미지가 창백하다. 하지만 사오정의 존재는 저팔계보다 먼저 당나라 스님 이야기에 등장한다. 11세기 원나라 시대 장터 이야기꾼의 대본에 등장하는 사오정의 초기 형태는 불경을 구하러 천축으로 가던 현장 스님의 전신이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두 번씩이나 그를 잡아먹은 악마로, 죄를 짓고 사막에 떨어져 귀양살이를 하는 하늘의 장수 출신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죄를 뉘우치고 모래가 강물처럼 흐르는 유사하에서 "뜨거운 불길과 사나운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천둥벼락을 치고 나타나 현장법사 일행에게 금빛 다리를 놓아주어 건너가게 해주었다“는 키가 30척이나 되는 심사신(深沙神)이란 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형태가 소설 『서유기』로 완성되는 동안 점차 강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 형태로 변화 발전하게 되었다.
『서유기』의 내용 전반에서 사오정은 대략 품위가 높지 않은 전형적인 하급관리라 할 수 있다. 현대적인 이미지로 규정하면 원칙을 잘 지키고 열심히 일하는 샐러리맨의 이미지로, 사오정은 오로지 속죄하기 위해 부처님의 법을 추구하며 고행하는 승려이다. 손오공이 요괴 마귀를 때려잡는 의도가 명예를 위해서라면 저팔계는 실리에 치중한다. 하지만 사오정은 오로지 주어진 직분에만 충실히 일한다.
손오공이 과거 제천대성 시절의 위엄과 기세를 버리지 못하고, 요괴와 도적을 때려잡는 일을 악을 뿌리 뽑는 당연한 의무로 여겨 가차 없이 살생을 저지른다면 저팔계는 위풍을 뽐내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쇠스랑을 휘두른다. 반면 사오정은 불교신도로 자비심과 법도를 지켜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다. 손오공이 스승과 번번이 부딪혀 갈등을 빚고 저팔계가 스승을 충동질하여 갈등을 부추길 때도 오로지 스승의 뜻을 따르는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화목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으며, 동료들 가운데서 가장 당나라 스님을 이해하고 보살필 줄 안다.
사오정의 처사는 대체로 신중하면서도 외유내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 담백한 기질이면서도 견인불발의 굳센 정신력으로 일행 가운데 제일 침착한 태도를 지녔다. 중요한 고비마다 둘째 형님 저팔계를 타이르고 권면할 만큼 의젓한 막내이다. 그에게는 탐욕도 번뇌도 없다. 기꺼운 마음으로 아랫자리에 처해 있으면서도 가슴 속에서는 언제나 대국을 생각하는 너그러운 도량의 소유자가 곧 사오정이라 할 것이다.
* 『서유기』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바로 사오정입니다. 실제로 사오정은 소설 내에서 크게 사고를 친 적도 없고 잔인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으며 사오정이 활약하는 부분은 누군가를 살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강제로 요괴한테 시집온 보상국의 백화수 공주가 납치된 삼장을 풀어주고 후에 보상국 왕의 부탁을 받아 공주를 구하러 왔을 때 요괴가 공주가 사주한 것으로 의심하자 공주와 관련없이 보상국에서 실종된 공주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찾고있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알아서 온 것이라고 둘러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종 삼장의 말을 듣지 않아 흩어지려는 손오공이나 저팔계를 타이르는 등 옳은 소리를 하는 모습은 사오정이 도맡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하는 인물이라고 할까요. 홍해아에게 삼장이 납치되었을 때 오공이 스승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덕이라고 하며 흩어지자고 이야기하고 팔계가 동의할 때도 자신들에게 삼장에게 입은 은혜가 있고, 그를 지키고 떠나야 할 사명이 있음을 일깨우는 등 가장 사리에 맞는 소리를 하기도 하며 가끔 팔계가 중요한 자리에서 추태를 부릴 때 더 어른스럽게 그를 타이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막내인 탓인지 요괴와 싸울 때는 일선에서 물러나 짐과 백마를 지키며 얌전히 그들을 기다리는 통에 활약이 크지 않지만 팔계까지 움직일 수 없거나 납치되었을 경우 오공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요괴와의 싸움에서 불리해질 때 나름 충고를 하는 등 할 때 하면서 생각이 깊은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지요. 오히려 그 능력이나 성격을 부각시키는 바람에 가끔 민폐 수준에 이르기까지 하는 삼장법사나 손오공, 저팔계에 비하면 사오정은 이런 차분하고 신중한 면이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어 도리어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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