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리츠코 여사의 책은 『삼국지』 매니아로써 유익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이번의 책도 그렇습니다. 이번 『삼국지 깊이 읽기』에서는 단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만이 아니라, 『삼국지연의』가 성립되기 전에 영향을 준 역사서 진수의 『정사 삼국지』와, 민간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림책 『삼국지평화』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여섯장으로 나누는데, 1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삼국지』의 변천사와 모종강본에 대한 짧은 설명, 그리고 『삼국지연의』에서 활약하는 주요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옵니다. 제1장에서는 진수의 삼국지와 역사가 진수의 불운한 인생, 그리고 진수에게 덧씌워진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역사 삼국지가 어떤 관점으로 쓰여져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나라의 사관인 진수가 개인적으로 집필한 이 『정사 삼국지』는 높은 평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계속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논란의 근거가 되는 이야기의 상당수는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루머'에 불과한 경우도 상당합니다.
1장에서 가장 많이 할애되는 이야기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과연 위를 정통으로 삼았느냐, 촉을 정통으로 삼았느냐인데, 책을 읽어보신다면 진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위를 정통으로 삼는 거 같아도 그 표현에 있어서 촉을 더 중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촉나라 정통론은 후대에 나온 것이 아닌 진수의 『삼국지』에서부터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제2장에선 삼국지연의가 등장하기 전 민중들의 사랑을 받은 『삼국지평화』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제3장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중심인물인 관우를 중심으로 어떻게 『삼국지평화』와 달라졌는지를 고찰합니다. 『삼국지』에서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우와 장비는 역사서에 기록된 그 성격마저 서로 정반대이며-관우는 사대부나 장수들에게 오만하게 군 반면 아랫사람들에겐 부드러웠고, 장비는 선비들을 존중한 반면 아랫사람에게 거칠게 대했다는 등-,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나설 때조차 그 성격이나 활약상도 정반대예요.
『삼국지평화』는 민중의 코드에 맞추어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위해 장비는 강하고 저돌적이며, 때론 재기발랄하다가 황당무계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일종의 '트릭스터'형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관우는 『삼국지연의』에서 한 사람(유비)에게 충성하면서도 은혜를 입으면 설령 적(조조)'이라도 존중해마지 않는 사대부들의 이상형적인 존재로 부각되면서 죽은 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초월적인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삼국지평화』는 후대의 작품인 『삼국지연의』와 비교하면 그 줄거리나 구성도 조잡할 뿐 아니라, 장비를 제외한 인물들은 공기화되고, 심지어 역사적인 오류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점이 많은 반면 민중의 환상과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는 면모가 강합니다. 반면 『삼국지연의』는 『삼국지평화』의 무수한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고, 역사적 사실에 맞추어 쓰되 여러 장면들을 소설적으로 멋지게 형상화하는 등 이른바 문학적 성숙도를 성취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삼국지평화』의 화용도씬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조조가 관우에게서 도망을 치는 밋밋한 구성으로 되어있는 반면,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와 조조의 애틋함을 더 부각시키지요.
그 외에도 여러 장면에서 『삼국지연의』는 『삼국지평화』보다 더 세련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데, 이는 삼국지의 이야기가 민중의 손을 떠나 사대부 지식인(나관중, 물론 불우한 지식인이기에 당시 천대받는 민중소설을 집필할 수 있었다지만)의 손에서 새로 쓰이면서 소설로써 완성도를 이룬 것이지만 그 덕택에 문학적으로 성숙해졌어도, 민중적인 요소는 많이 깎여나간 아쉬움이 남는다고 합니다. 제4장에서는 각 나라의 중심들인 유비, 조조, 손권(을 비롯한 손견과 손책 일가)를 어떤 식으로 묘사했는지를 살펴봅니다. 흔히 위선적인 이중자로 여겨지는 유비나 유능하고 인재를 아끼면서도 잔혹함을 스스럼 없이 표현하는 조조,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손권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흔히 알려졌듯이 유비가 중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상-책의 표현에 따르면 텅빈 중심으로 중요인물이되, 매력적인 활약은 주위인물에게 부과하는-을 표현한 것 외에도 저자는 원말명초의 특수성, 한족의 회복을 바라는 민중의 심리를 유비의 몰락한 귀공자상에 대입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가 가장 공을 들였다 싶은 인물은 바로 조조인데, 『삼국지평화』에서는 그저 악역인데다 죽는 모습조차 묘사되지 않는 조조에게 많은 일화를 참고하여 독특한 악역으로 발전시킨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입니다. 『삼국지연의』를 읽어본다면 알겠지만 조조가 활약하는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의 비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고로 『삼국지연의』가 조조를 일방적으로 폄훼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지요. 반면 유비와 조조완 다르게 후발 주자인 손권의 비중은 둘에 비하면 적고 그 매력도 덜할 수 밖에 없는데, 다만 나관중본이 손씨일가에 냉정한 시선을 던진 것에 비하면 모종강본은 어느 정도 이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던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5장으로 넘어서면 『삼국지연의』의 후반 주인공인 제갈량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인 주유,사마의,조운 등을 중심으로 『삼국지연의』의 특징이 설명되는데, 『삼국지연의』에서 보여지는 제갈량의 신선과 같은 면모는 소설적 재미를 위한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역시 삼국지연의 성립 이전 전해지는 도사 이야기들의 영향을 받은 면모가 크며, 재미있게도 제갈량의 고향인 산동성 낭야는 도교인 천사도의 메카지였다는 점입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의 신선다운 면모는 제갈량이 살았던 고향의 특색과 어느 정도 도교적 요소에 긍정적인 민간의 이야기들이 소설의 재미를 위해 극적인 각색이 더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갈량의 이런 면모를 부여하기 위해 주유와 사마의가 제갈량과 각각 연을 맺게 되는데, 역사완 큰 관련없이 주유는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경향이 있다면 사마의는 제갈량에 비하면 마술사적 면모는 떨어지나 제갈량의 일대숙적으로 복잡한 개성을 성취하게 됩니다. 반면 조운은, 관우와 함께 사대부들의 이상형으로 등장하며, 연의에서 균형잡힌 무인으로 나타나되, 화려하게 활약합니다. 마지막 6장은 앞부분에서 크게 다루지 못한 인물들을 다루는데, 태평도의 창시자인 장각이나 신의 화타, 도사 좌자나 관로 『삼국지』내의 지식인인 순욱, 공융, 예형, 그리고 몇 되지 않지만 매력을 선사한 『삼국지』 내의 여성들이 중점으로 등장합니다.
장각은 삼국지시대를 연 계기를 쥔 인물로 부각되는 반면 화타 , 좌자, 관로는 동시대의 인물이라도 『삼국지』 내의 인물들과 역사적으로 크게 접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내에서 이들은 잠깐이나마 중요하게 활약하며 특히 조조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데, 이들의 등장은 소설 『삼국지연의』가 조조라는 캐릭터를 장식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앞서 등장한 『삼국지평화』에 비하면 지적인 인물들의 묘사에 공을 들이는데 이는 작가가 어떤 계층에 있느냐의 차이를 보여주는 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설명된 인물들은 그 끝이 조조와 얽혀 죽음을 맞이한 조조에게 반대되는 포지션의 지식인들인데, 소설 속 묘사된 이들의 죽음은 대개 역사적 사실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결과적으로 조조는 자신에게 반대한 지식인들까지 포용하면서 입지를 다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초선, 견부인, 손상향, 채염과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성들이 중심이 된 『삼국지연의』 속에서 부각된 여인들로 그 비중은 적어도 저자인 나관중의 여성관이 심할 정도로 편협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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