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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에 각색이 들어가는 이유 : 동자꽃 설화와 여우누이 설화 사례

by 01사금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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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자꽃. 이미지 출처는 픽사베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설화 중에 어린시절 인상적으로 읽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은 것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동자꽃 설화'와 '여우누이 설화'다. 현대의 장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동자꽃 설화와 여우누이 설화는 굉장히 판이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동자꽃 설화는 어린 동자가 외롭게 죽음을 맞는 슬픈 내용이며, 여우누이 설화는 그 시절의 공포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싹한 이야기다.

원래 설화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조라 지역이나 판본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결말 부분에서 달라지거나 서두 부분에 이야기를 더 추가하여 인과관계를 더 뚜렷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설화에서도 사람들의 재해석이나 각색 - 일종의 2차라고 할 만한 창작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발화자가 자신들 입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말을 틀어버리는 경향도 있는 듯 하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28718&cid=46694&categoryId=46694

 

동자꽃

[생물학적특징] 일년생 초본 높이는 1m, 줄기는 곧게 서고 마디가 뚜렷, 식물체는 털이 존재 잎은 단엽, 대생 배열, 엽병은 없음, 엽신은 장난형 화서는 취산화서, 꽃은 양성화, 6~7월 개화, 주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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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분을 키우면서 동자꽃 종류를 찾아보게 되다가 문득 생각나서 검색해본 동자꽃 설화. 이 설화는 어린 시절 동화로 처음 접한 것으로 어린아이가 절에서 홀로 보호자인 스님을 기다리다가 얼어죽었다는 슬픈 내용인지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였다. 이후 아이의 혼이 동자꽃으로 환생했다고 하는데 진짜로 그러했다기보단 실제로 절에서 불운한 사정으로 홀로 방치된 아이가 얼어죽거나 굶어죽은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이 동자꽃이라는 존재를 상상력으로 같이 엮은 것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동자꽃 설화는 며느리밥풀꽃 설화처럼 꽃의 유래담이기도 하면서 이후 사건을 접한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죽은 이들의 혼을 위로하고, 자신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탄생한 설화일 것이라고 해석된다.

전설을 좀 더 현대적으로 각색한 한국 애니메이션 『오세암』

이 동자꽃 설화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것이 바로 오세암 설화로 이 두 설화의 유사성을 분석하면 아마도 두 이야기는 같은 사건을 모티브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세암 설화는 혼자 남겨진 동자가 죽지 않고 현신한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을 받아 살아남는다는 결말을 맞는데 이는 마치 동자꽃 설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바꾸어 희망적인 결말로 틀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만약 오세암 설화가 동자꽃 설화보다 이후에 형성된 것이라면 이건 후대 사람들이 동자꽃 설화의 비극성을 좀 더 덜어내고 행복한 엔딩을 만들기 원한 사람들의 바람을 투영한 결과가 아닐까?

이야기의 형태와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여우누이 설화 역시 기본적인 원래 구조에 후대의 사람들이 설정을 새로 추가한 부분이 있다고 해석되었다.

https://theqoo.net/square/2496619954

 

더쿠 - 한국 전래동화 중 가장 기괴한 동화

https://img.theqoo.net/hAbYI https://img.theqoo.net/RccuT https://img.theqoo.net/xqwYi 결말 오빠가 집에 돌아가니 동생만 있었고 동생이 밥준다고 나가며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도망감. https://img.theqoo.net/faSUQ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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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설명하는 바대로 여우누이 설화는 딱히 큰 잘못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하게 요괴(여우)의 타깃이 되었다는 이유로 몰살당하는 내용이라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의 괴담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나오곤 하는데 한국의 괴담은 인과관계에 굉장히 초점이 맞춰지고 귀신이 등장하더라도 성불이나 공포 요소를 제거하면서 사건 해결을 지향하는 반면 일본괴담은 재앙의 원인도 불분명하고 결말에서조차 확실한 해결방법은 없이 근본적인 원흉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구조가 많은 편이니까.

여우누이 설화는 지역이나 판본에 따라 주인공이 첫째아들(혹은 둘째아들까지 포함)이나 막내아들로 다른 경우가 많으며 보통 아들 하나가 진실을 고하면 미쳤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고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아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집에 남았다가 화를 입는 전개는 똑같다. 참고로 내가 어린 시절 본 동화책에 따르면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이 주인공으로 셋째 아들은 형들이 쫓겨나는 걸 보고 막내딸이 여우라는 사실을 숨겨 집에 남았다가 부모와 같이 화를 입는 내용이었으며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스님의 도움으로 호리병을 얻어 여우누이를 물리친 뒤 마을을 떠난다는 좀 더 쓸쓸한 여운이 남은 결말이었다.

그런데 이 설화에선 여우가 어떻게 평범한 부잣집의 막내로 태어나 사람들을 해쳤는지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판본으로 추정된다. 다른 판본에 따르면 아버지가 여우를 해쳤다거나, 혹은 딸을 바라는 소원을 삼신할머니에게 빌었기 때문에 삼신할머니가 괘씸하게 여겨 여우를 딸로 환생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삼신할머니가 아들이 아닌 딸을 바랐다는 이유로 여우를 환생시켰다는 판본은 매우 황당한 것으로 삼신할머니 탄생설화를 다룬 '삼승할망본풀이'에서 삼신할머니로 좌정하는 명진국 따님은 모든 아이들을 아끼며, 자신을 모욕한 남성(마마신 대별상)에게 분노하여 자기 능력으로 가차없이 응징하는 여신이다. 애초에 남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남자의 처로 들어가지도 않는 당당한 여성이 아들보다 딸을 바랐다는 이유로 애꿎은 집안을 몰살시키려고 했다는 내용은 배경이 조선시대 가부장제 사고방식이 우세한 시절이라고 해도 그 신격을 심하게 훼손하는 수준이다.

바꿔말하면 조선시대 성리학적 관념은 한국 고유 여신의 신격을 부정하며 현대 기준으로 악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끌어내리는 사고방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신격이었던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밀려나 '마귀할미'라는 존재로 부정되는 케이스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까.

어쨌든 이 여우누이 설화에 추가된 설정에선 아버지가 여우를 죽였기 때문에 그 벌로 여우누이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더 개연성이 있는데, 이런 판본 역시 상대적으로 드문 편으로 여우를 죽여서 보복을 받았든지 삼신할머니가 보냈든지 하는 설정은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에 비하면 굉장히 미진하고 설득력이 부족해보이는 인상을 준다. 추측이지만 이런 설정 역시 여우누이 설화를 접한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인 의문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후대에 첨가된 이야기라고 해석된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si=VsyTGO4AT2v3z6Vq&v=Mf39D4T0LHY&feature=youtu.be

여우누이 설화를 재해석한 보컬로이드 유니 노래. 근본 설화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결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네이버 웹툰 <야자괴담>에서도 여우누이 설화를 재해석하여 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재창작한 사례가 있음. 열번째 이야기가 이에 해당하는데 여기선 오빠들의 이기심이 더 악독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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