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 신화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으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여신들이 많다. 그 유명한 바리데기 여신,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미, 곡식의 신 자청비, 복록을 점지해주는 칠성 여신, 원천강을 다스리는 오늘이 선녀 등등…. 여신들의 설화가 다양하고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에 타국의 설화와 비교해도 여성의 비중이 적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며 페미니즘적인 시선으로 한번 해석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설화 해석의 상당수는 현재 소장한 『살아있는 한국 신화 - 신동흔 저/한겨레출판』 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참고하였음.
1.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여신 설화의 공통점 중 하나로는 여신들이 초반에 남자에게 버림받거나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혹은 둘 다에게 버림받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널리 알려진 「바리데기」 설화의 바리 공주, 「제석본풀이」의 당금애기, 제주도 전승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 선녀, 제주도 전승 「삼승할망본풀이」의 동해용왕 따님, 제주도 전승 「칠성본풀이」의 칠성여신이 전부 해당된다.
예외적으로 「삼승할망본풀이」의 명진국 따님과 같이 타고난 현명함 때문에 하늘의 부름을 받은 케이스도 존재하기는 한다.
2. 일부 설화를 제외하면 남성(남편)과 상관 없이 신의 자리에 오른다.
그 다음에는 남자와 상관없이 자신의 힘으로 신의 자리에 오르거나 혹은 자식들과 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아들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설화의 경우 영웅 설화의 전형처럼 여신인 어머니가 수동적으로 구원받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남성의 존재와 상관없이 고난을 극복하여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여신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설화가 「바리데기」 설화로써 바리 공주는 불라국의 막내 공주지만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나중에 부모를 구할 약수를 구하기 위해 약수를 지키는 무장승(혹은 동수자)과 강제적으로 혼인을 하게 되는데, 남편 무장승(혹은 동수자)은 바리 공주가 9년의 노역을 끝내자 약수를 전해주는 역할만 하고 사라질 뿐이다. 이는 바리 공주의 업적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지 무장승(혹은 동수자)이 개입할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
한국 신화 속의 여신들 중 일부 - 「일월놀이 푸념」에서 부부가 함께 신이 된 궁산이와 명월각시 혹은 성주신 설화에서 황우양과 막막부인- 제외하면 남성과 맺어지는 일이 없이 여성 혼자서 신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혹은 혼인을 하더라도 남자의 도움 없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제법 보인다고 해도 좋다. 제주도 「세경본풀이」의 주인공 자청비처럼 남자(문도령)의 격이 자신보다 한참 떨어질 경우 그와 헤어지고 곡식의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설화도 존재한다.
제주도 「삼승할망본풀이」도 이에 해당하는데, 저승의 구삼승 자리를 차지하는 동해용왕 따님은 부모에게 버림받되 남자와 혼인은 하지 않았으며, 명진국 따님과의 내기에서 패배하였지만 그래도 저승에서 아이들을 다스리는 신의 자리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명진국 따님과 동해용왕 따님의 경쟁에 통치자인 옥황상제를 제외하고 남성은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제주도 「원천강본풀이」의 주인공 오늘이 역시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 천계를 찾아가는 일이 주 내용으로, 여기에 남자와의 사랑이나 혼인은 끼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이가 운명의 신 역할을 하며 다른 남녀를 엮어주기는 했어도 말이다. 천계를 찾아간 오늘이는 원천강을 지키는 여신이 되어 여행 도중에 만난 이들의 원을 풀어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3. 자식들과 함께 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바리 공주의 아들들이 저승의 시왕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는 것처럼, 자식을 낳은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 어머니와 자식이 같이 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3 - (1) 어머니와 아들이 신이 되는 설화
제주도 전승 「문전본풀이」에서 조왕신이 되는 여산부인과 「제석본풀이」의 당금애기 설화가 대표적이다. 웹툰 『신과 함께』에서도 다뤄진 내용이지만 여산부인은 남편인 남선비의 어리석음 그리고 악녀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계략 때문에 살해당했다가 일곱 아들의 희생으로 원한을 갚고 부활하게 된다. 이후 여산부인은 부엌의 조왕신으로, 일곱 아들은 각 방향과 문을 지키는 문전신이 된다.
「제석본풀이」의 당금애기는 스님의 아이를 낳았다고 집안에서 쫓겨난다. 이후 아들들은 성장하여 자신을 모독한 이들을 응징하고 핍박받는 어머니를 구해낸다. 당금애기는 아들 삼형제와 함께 생산과 곡식을 다스리는 신의 자리에 오른다.
3 - (2) 어머니와 딸이 신이 되는 설화
제주도 「칠성본풀이」는 매우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호남 지역의 「칠성풀이」는 버림받은 어머니와 그에게서 태어난 일곱 아들이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칠성신이 되는 이야기인 반면, 제주도 지역의 「칠성본풀이」에선 버림받은 어머니와 딸 일곱 자매가 함께 칠성신의 자리에 오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머니와 딸들이 함께 신이 된다는 점에서 제주도 「칠성본풀이」는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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