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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판 新서유기』 - 백호령 백골부인 에피소드 감상문

by 01사금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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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에서 ‘백호령 백골부인’ 에피소드는 원작 『서유기』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노선을 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소설에서 요괴 백골부인은 한 회 만에 오공의 손에 퇴장하는 약한 요괴지만 손오공을 파문당하게 만드는 계기를 준 장본인이고 이 손오공의 파문 사건은 자연스럽게 다음 에피소드인 황포요괴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버전에서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합치고 각색하여 황포요괴의 역할을 ‘백골부인’에게 맡기고 본래 등장해야 할 백화수 공주의 역할도 성별을 바꾸어 ‘천음’이라는 이름의 왕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도 더 추가하여 실은 이 백골부인이 과거 오백 년 전 손오공과 의남매를 맺은 백붕여왕 편편의 부활이라는 각색을 이루어, 『서유기』의 원작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 나름의 맛이 있기에 이런 각색도 나쁘게 보는 편은 아니고, 적어도 큰 틀에서 보면 원작의 뼈대를 바꾼 것은 아닙니다. 설정 자체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죠. 그런데 이렇게 각색을 하다 보니 특이점도 많아졌는데 이번에 다시 보게 되면서 그 특색을 캐치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왜 백골부인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손오공이 그가 백붕여왕 편편이라는 것을 못 알아봤는지 대체 천음왕자와 백붕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보리조사를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오공의 심리는 어땠는지 등등에 대해 파악이 가능했습니다. 파문당하고 고향 수렴동으로 돌아간 오공은 원작에서 원숭이들을 위협하는 사냥꾼들을 다수 학살하는 악행을 벌이며 통쾌해하는 반면, 드라마 버전에선 그런 거 없이 그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후회의 기색을 비추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드라마 오리지널 인물인 손자 소소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늘 어린 상태이며 충신인 통비원후가 늙은 모습으로 살되 죽지 못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저승에서 벌인 명부첩 손상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자신을 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즉, 인과에 대해서 이번 편에 두드러지는데 『서유기』 자체가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는 것을 보면 이상할 것도 아닙니다. 에피소드 후반 편편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밝히는 이야기도 나름 놀라운 각색인데 어째서 백붕인 그가 백골요괴로 환생했는지에 대해서 손오공의 문제임이 드러납니다.

드라마 초반 천궁소동 편에서 오공을 구하려다 편편은 큰 부상을 입고, 그 상태에서 도주하다 교마왕 청령과 함께 덫에 걸려 매장이 되고 마는데 청령은 괜찮았는지 몰라도 편편은 그때의 부상으로 자신의 손상된 몸과 혼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언급하지요. 청령은 혼백이 다치지 않아서인지 후반 서량녀국 오리지널 요소로 여왕으로 환생했을 법한 암시가 있는 반면 편편은 그러지 못하고 우연히 발견한 시체에 깃들어 스스로를 복구하는데 이 시체는 물가에 버려진 화살에 맞아 죽은 여인의 시체라는 게 드러납니다.

즉 연기하는 배우는 같지만 드라마 설정 상 백붕여왕 상태의 편편과 백골부인 상태의 편편은 생김새가 다르기에 오공이 모습만 보고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편편이 당승 삼장의 고기를 노린 것도 자신의 힘을 회복하고 천음의 병을 낫게 하려는 속셈 두 가지가 있었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요소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편편이 구하고 억류해놓은 천음왕자는 어떤 꿈을 꾸는데 그 꿈속에선 한 젊은 여인이 남자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 모습이 나옵니다.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을 때에는 혹시 전생에 천음왕자가 그 여인을 죽였고 그 여인의 환생이 편편인가 싶었지만 이건 너무 단순하고 진부한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더군요.

다름이 아니라 천음왕자가 꿈에서 본 화살에 맞아 죽는 여인은 바로 천음왕자의 전생의 모습이었던 거죠. 전생을 통한 성전환이라는 요소는 있을 법하면서 많이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참신했는데, 왜냐면 보통 창작물에서 전생 환생 요소를 쓰면서도 성별이나 성격은 물론 선악의 포지션마저 고정시키는 진부한 짓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거든요. 모조리 똑같은 상황이라면 굳이 환생이라는 변화를 맞을 필요가 왜 있냐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거기다 이 드라마의 커플이 원작의 커플의 성별을 전환시킨 것을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드라마에서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집니다.

천음은 전생에 여인이었을 무렵 화살에 심장을 맞았기 때문인지 가슴이 아픈 병을 앓게 되고, 전생에 자신을 쏘아죽인 남자는 바로 부친인 보상국 국왕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흔히 원수지간이 부모자식으로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던데 드라마에서 이를 적용하였고, 천음이 왕궁을 나선 이유에서 아버지인 국왕과 늘 대립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보상국 국왕은 아들이 군사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 반면 천음왕자는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아 늘 싸웠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거기다 놀랍게도 편편의 영혼이 대신 깃든 그 활에 맞은 시체가 바로 천음왕자 전생의 몸이었기에 편편과 천음이 서로 끌리게 된 셈이었고 천음이 전생의 상처를 기억하게 된 셈이었죠.

분명 육체는 자신의 것이었는데 거기에 깃든 영혼은 다른 사람이라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미묘하고 독특한 상황이 펼쳐진 셈입니다. 제작진의 센스가 엿보이는 요소라고 할까요. 또한 이 드라마 '백호령 백골부인' 에피소드에서는 원작 소설 『서유기』에서 누누이 말하는 인과의 요소가 들어가 있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보상국 왕실이 왕자를 잃어버리게 된 연유도, 왕자의 가슴이 늘 아팠던 것도 편편과 사랑에 빠진 것도, 오공이 보상국에서 편편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과거의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이었던 것.

드라마 백호령 백골부인 에피소드의 이런 장면들은 과거를 제대로 매듭짓지 않으면 혹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까요. 과거가 지나갔다고 해서 사람들은 거기서 자유롭지 않고 일단 저지른 일의 결과에 대해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 에피소드의 오공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입을 싹 닫는다고 사람이 자기 행적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도리니까요. 처음엔 너무 드라마의 각색 탓에 불호한 에피소드지만 다시 제대로 보니 제작진 나름의 메시지가 탄탄한 이야기였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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