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도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의 통천하 에피소드가 끝나면 바로 원작에서 제가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 독각시대왕의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설산을 넘게 된 삼장일행은 민가에 들려 밥이라도 얻어오라고 오공을 보채게 되는데 오공은 그전에 화안금정으로 산가의 저택이 요괴 근거지라는 것을 꿰뚫어 보아 반대편 민가로 날아가 억지로 시주를 얻습니다. 원작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민가 할아버지랑 티격태격하는 부분은 개그씬이지요.참고로 화안금정은 손오공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요괴를 알아보는 불같은 눈에 황금눈동자를 말하는 건데, 드라마에선 딱히 효과를 주는 경우 아니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항상 눈에 CG처리하기도 그렇고 비슷한 색상의 렌즈도 없기 때문 아닐는지요. 독각시대왕 에피소드를 보면 원작에선 자신만만하고 거친 요괴였던 독각시대왕의 성격이 드라마에선 약간 다른게 보였습니다. 물론 원작에서도 삼장을 잡아먹으려 한 것 외에도 자신의 무예 실력으로 오공과 겨루고 싶었다는 다른 속내가 드러나긴 합니다만 여기 드라마에선 그 성격에 좀 더 깊이가 들어간 것이 보입니다. 에피소드에 걸쳐 삼장과 독각시대왕의 대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나름 설전이라는 게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드라마만의 유머코드겠지만 독각시대왕에게 삼장이 대화를 시도하자 오정이 지나가는 말로 차지국의 호력, 녹력, 양력대선은 인간의 모습을 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멍청한 놈들인데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독각시가 말을 알아듣겠냐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왠지 사람을 온전히 흉내 낸 차지국 요괴들이 안쓰러워지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삼장은 독각시대왕의 저택에 들어선 뒤 팔계와 오정이 옷을 멋대로 꺼내 입은 것이 잘못인 것은 인정하지만, 일단 독각시대왕의 함정이 무작위적인 것은 아니요 탐욕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자만을 응징했을 뿐 그저 쉬러 들어온 사람들은 내보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가 지켜온 원칙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자신을 잡아먹는다면 그 원칙이 깨어지는 것이고 의외로 고지식함을 보여주는 독각시는 삼장을 잡아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내내 삼장을 잡아먹는 것을 망설입니다. 그의 원칙대로라면 물건에 손을 댄 팔계가 먼저 타깃이 되어야 하고 실제로도 옆에서 팔계가 어그로를 끈 탓에 돼지고기 요리가 될 뻔하기도 합니다만... 재미나게도 팔계는 돼지고기 취급을 받는다면 오정은 물고기요리로 취급받는 게 드러나요. 그런데 팔계와 오정이 물건에 멋대로 손을 댔음에도 정작 독각시는 그들을 잡아먹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난리를 치는 것은 그 밑에 있는 졸개요괴들입니다.
독각시대왕은 자신의 입으로 수천년 동안 수행을 한 자신도 참는데 왜 못 참느냐며 부하들을 타이르고 그때마다 원군을 청해온 오공 일행과 싸움을 벌입니다. 여기서 드문 장면이지만 보통은 전선에 직접 나서지 않는 이탑천왕의 싸움 장면도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삼장과 독각시대왕의 설전은 이번 에피소드의 주요 부분입니다. 내용 전개로 보자면 금강탁으로 무기 뺏기고 원군을 청해 오는 단순 패턴이지만 여기선 삼장과 독각시대왕에게 수행자로서의 어떤 동질성을 부여함에 따라 단순 독각시대왕만이 아니라 삼장법사에게까지 캐릭터에 깊이가 생깁니다.
독각시대왕의 망설이는 행동이나 그 원칙성을 보고 그가 어떤 일파의 수행자라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그의 스승이 훌륭한 자일 것임도 눈치채기도 하며, 그에게 불교의 도리를 이야기하면서 설득을 하려고 하는데요. 삼장의 이런 모습은 원작 소설의 겁먹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정말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드라마 오리지널로 삼장일행을 구하러 온 오공의 여의봉을 독각시대왕이 금강탁 고리로 빼앗는 것을 보고 그가 도가의 수행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장면도 나옵니다. 독각시대왕은 자신이 어느 종교의 수행자인지 밝히지 않았는데도 삼장이 고리만 보고 정체를 눈치챈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데요. 솔직히 보는 시청자인 제 입장에서도 저걸 어떻게 눈치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삼장의 대답으로 불교의 상징으로 윤회와 순환을 나타내는 법륜과 도교의 상징으로 태극이 있는데 금강탁의 고리를 보고 그것이 태극과 관련성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죠. 역시 여러 경전을 독파하여 삼장 칭호를 받으신 분 답다고 해야 할까요. 빼앗은 여의봉으로 독각시대왕이 오공의 분신을 내리치는데 오공 말고는 들기 힘든 여의봉을 쓰는 것으로 보아 독각시대왕의 완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삼장 일행은 오공이 죽었다고 오해하여 그때부터 아예 자신도 죽이라며 악을 씁니다. 물론 이것은 오공의 페이크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독각시대왕은 드디어 삼장을 잡아먹겠다면서 두 제자와 달리 묶어놓지는 않았던 삼장을 드디어 기둥에 매어놓습니다.
하지만 독각시대왕은 결국 삼장을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나는데요. 그렇게 묶어놓기만 할 뿐 오히려 삼장의 팔을 물어뜯으려는 부하요괴를 제압하는 등 거친 모습과 다른 속내를 비추지요. 결국 그는 오공이 찾아온 자신의 진주인인 태상노군에게 굴복하는데 그는 태상노군의 가르침이 너무 천천히 가는 방식인지라 좀 더 빨리 도를 얻을 생각으로 불로장생하는 삼장을 잡아먹으려 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어쨌거나 욕망에 의해 움직였던 드라마의 다른 요괴들과 달리 그 캐릭터가 남다르게 그려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드라마 막바지에서 금정대선의 집에서 회포를 푸는 일행이 대화를 나눌 때 독각시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보아 삼장일행에게도 독각시대왕이 상당히 깊은 인상으로 남겨졌음을 알 수 있다지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좀 의아했던 것이 태상노군은 원시천존과 함께 도교의 삼신 중 하나로 모셔지는 존재로 천궁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속하는데 자막에선 오공이 그에게 마구 화를 내고 반말을 하며 도리어 태상노군이 오공을 존중하는 말투를 쓰는 것으로 나오더군요. 보면 부처님한테도 수틀리면 막말하는 오공인지라 그 캐릭터 속성에 버릇없음이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독각시대왕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서량녀국의 다양한 소동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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