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의 '반사동 거미요괴' 에피소드의 노선은 원작과 상당히 판이한 전개를 가지는데 원작의 2회 정도의 짧은 이야기가 드라마에선 좀 더 긴 이야기로 각색되었습니다. 각색의 정도를 본다면 원작의 보상국 에피소드와 드라마의 보상국 에피소드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는 내용인데 초반부터 거미요괴들이 사람 잡는 장면이나 막내거미(이름은 시시)가 실은 맏이거미(이름은 보주)가 낳은 딸이라거나 막내거미 시시가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거나 지네요괴 금광도인을 먼저 마주친 오공 일행이 요괴인 것을 눈치챘어도 사악한 요괴는 아니라고 여기는 등 원작과는 다른 노선을 가겠다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재미나게도 이 지네요괴에 대한 언급은 후반의 '천축국'편에서 나오는데 오공이 천축국 공주로 변신한 옥토끼 정령을 보면서 사악한 기운이 없는 것을 보고 지네요괴처럼 요괴라 하더라도 선한 자질을 갖고 있는 경우에 그렇다고 삼장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원작의 백안마군 역시 자신의 의남매들인 거미요괴들의 부추김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삼장일행을 위협할 기색은 없었다는 데서 그다지 나쁜 요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는데 드라마에서도 이를 좀 더 넓게 해석한 셈입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각색된 장면 중에는 지네요괴 백안마군이 맏이거미 보주의 계략에 넘어가 그와 관계를 맺고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때 맏이 거미인 보주가 자기 몸 안에 이미 그의 아이가 있다며 아이와 자신을 같이 죽일 거냐고 회유를 하여 결국 그와 혼인관계를 맺게 되는 내용이 있어요. 아마 요괴 그것도 지네와 거미를 기반으로 한 요괴들이라 임신이 빠른 듯한데 백안마군이 맏이거미가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가준 이유에 이런 점도 작용했나 싶더라고요. 물론 이것은 드라마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맏이거미의 속임수였습니다만 지네요괴도 죽일 작정이었고 나중에 자식이 태어나도 잡아먹었을지도 모릅니다. 백안마군은 자포자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랑에 기반한 행동에서였는지 아니면 둘 다 혼재된 감정에서였는지 해석이 분분하겠지만요.
어쨌든 백안마군은 맏이거미의 결혼을 한 뒤 삼장법사를 잡아먹어 양분으로 삼자고 하는 말에 넘어가 나중에 자신의 도관에 들린 삼장 일행에게 독약을 먹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맏이거미가 자신을 이용할 목적이라는 것도 눈치채어 따로 미약을 막내거미에게 넘겨줘 숨기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만 그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유리하게 흘렀어도 백안마군의 운명은 정해졌을 겁니다. 그런데 자식이 담보되어서인지 아니면 애정에 흔들려서인지 그런 것은 수긍하는 편이었고요. 의외로 순정파이려나요? 여기서 백안마군을 살린 건 다름 아닌 오공인데, 유이(원작에선 유일, 드라마에선 오정도 제외)하게 독약을 먹지 않은 오공은 맏이거미가 실은 금광도인 백안마군을 살해할 목적으로 차에 독을 타려 하는 것을 알고 잔을 바꿔버립니다.
원작에서 요괴라면 상대를 봐주지 않던 오공의 행동을 보면 매우 특이한 일인데요. 물론 드라마에선 삼장과 팔계가 중독된 것을 해독하려면 백안마군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후반 싸움에서 오공이 그는 검은 과부 거미이기 때문에 그를 죽일 거라고 경고를 해주거나 백안마군 역시 오공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대사를 하거나 하는 면을 보면 인간적으로 서로 호의를 가졌을 가능성이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종파는 달라도 요괴 출신 수행자인 데다 처음 요괴들에게 된통 당한 오공이 토지신에게 화풀이를 할 때 요괴의 정체와 요괴의 힘의 근원이 배에 달린 진주라는 비밀까지 알려주며 그것을 제거하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까지 했으니까요.
이렇게 지네요괴와 맏이 거미에게 서사를 부여한 것처럼 막내거미에게도 특별한 서사가 존재합니다. 여러모로 원작과 다른 이야기이고 좀 늘어지는 느낌도 나서 탐탁치 않았지만 그래도 이 에피소드가 좋은 이유는 바로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사오정의 비중이 크게 늘었고 그가 활약을 한다는 점인데 막내거미 시시와 사오정의 인연은 사오정이 거미자매들에게 속아서 잡혔을 때 시작합니다. 삼장은 잘생겼다고 칭찬한 맏이거미가 오정을 보고 추하다고 하는 반면 막내거미는 잘생겨 보인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드라마 설정과 상관없이 배우 자체의 외모는 괜찮은 편) 여기서 오정이 거미요괴들에게 잡혀든 이유도 원작의 정 많은 성격을 반영한 것처럼 다른 여자들에게 몰매 맞는 여자를 구하다가 그게 속임수인 줄 모르고 걸려든 셈이에요.
그런데 오공과는 달리 팔계나 오정이 거미요괴들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사제들간의 실력차는 큰 모양. 어머니의 반강제로 오정을 잡아먹게 된 막내거미는 도리어 오정의 독을 중화해 주고, 그것을 계기로 오정은 막내 거미가 가진 번뇌를 알게 되는데요. 인간을 잡아먹어야 하는 본성이 저주스러운 막내 거미를 보면서 오정은 자신 역시 유사하 요괴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과거를 밝히며 삼장과 만난 뒤 요괴의 생활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고 막내 거미 역시 원하는 대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북돋아주지요. 그런데 모든 요괴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인간에 근접할수록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이 대사는 『서유기』 속 요괴들은 대개 인간의 모습이 되려고 수행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동병상련의 감정인지 연민에서인지 오정과 막내거미 시시와는 서로 사랑이 싹트고 후반에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약속하며 헤어지는 결말을 맞이하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드라마 오리지널이지만 『서유기』 드라마 제작진들은 러브라인을 전개시킬 때 나름의 개연성과 여운을 얹어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러브라인에 있어서 이런 점도 쉽지 않은데 정말 연출을 못하는 창작자들은 굉장히 억지스럽고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없게 러브라인을 전개시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서유기』 드라마에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제작진의 이런 탁월한 전개 능력 덕인 듯합니다.
반면 지네 요괴나 막내거미, 맏이거미는 나름 사연을 얹은 데 비해 다른 거미들은 비중이 적은데 나머지 거미 요괴들은 일반적인 요부형 요괴들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백안마군과 맏이거미의 혼인 때 삼장을 붙잡고 자기는 팔을 먹겠다 자기는 심장을 먹겠다며 그를 농락하는 장면을 보면요. 이 거미요괴들은 보면 일 년 뒤에 나온 2011년 『장기중판 新서유기』 드라마에 해당 에피소드의 거미들이 삼장을 농락할 때와 많이 유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010년도 드라마의 반사동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살아남은 인물은 그나마 선한 모습을 많이 비춘 지네요괴 백안마군과 막내거미인데 나름 권선징악적 메시지도 넣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드라마를 보면서 눈에 띈 점 몇 가지 있었는데 여기 반사동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토지신 역할을 한 배우는 수렴동 통비원후를 한 배우와 같더군요. 여러 역할을 한 배우가 많은데 실은 소뇌음사 황미대왕의 배우도 뇌공 배우랑 같다고 위키에 나오더군요. 또 요괴들한테 시달리는 동안 삼장이 뭔가를 외우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반야심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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