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의리론』 감상문

예전에 관우신앙- 관제 신앙을 다룬 책을 읽은 적도 있고, 관제신앙에 관해서 인터넷상에서 찾아본 적도 있지만 대개 관제신앙의 형성을 위정자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뭔가 부족하단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특이할 정도로 민중적인 관점에서 관우-관제신앙의 형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미 리뷰한 바 있던 『관우 : 삼국지의 영웅에서 의리와 부의 신이 되기까지』나 『한국의 관제신앙』도 관제신앙의 형성과정과 변천사를 살펴본 책입니다. 앞의 두 가지 책과 이 『관우의 의리론』에서 공통점을 보이는 점이 관우는 본디 민간의 인기 많은 신이 되었다가 나중에 중국에서 국가적인 신이 되었다는 점인데, 흔히 나라에서 백성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관제신앙을 포교했다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라 위정자 입장에서 민중을 다스리기 편하도록 민간의 신을 그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하여 차용한 것이에요. 그런 점 때문에 민간에서 받아들여진 관제신앙의 관우와 위정자들이 받들었던 관우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위정자들은 역사 속에서 유비를 향해서만 충심을 바쳤던 관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유교적 충의에 맞추었지만 실제로 관우의 충심이 유교에서 말하는 충의와 일치하느냐는 개인적으로 좀 의문입니다. 유비가 한실의 부흥을 내세웠고 훗날 촉한정통론이 대세가 되긴 했지만 관우의 충심은 한실의 황제가 아닌 유비 개인에게 향한 점이 있어보이고 이것을 유교적 충의라기보단 의협에 가까운 마음으로 보는 해석이 더 많더군요. 이 책을 관통하는 코드가 바로 관우의 '협(俠)'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유교적 충의와 맞물린 것은 사실이나 유교적인 이미지에 관우를 구겨 넣는다면 민중이 왜 그토록 관우를 갈망했느냐는 설명을 하기 힘들어지는 측면이 있으니 이 책이 그것을 설명하는 건 아닌가 하는데요. 민중의 갈망은 지배층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측면이 분명 어딘가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요.
책에선 관우의 협이 민중에게 받아들여진 원인을 당대 후한시대의 혼란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합니다. 지배자들이 피지배층을 착취하는 시대, 관우의 초기 시절의 이야기는 정사에도 잘 전해지지 않지만 앞서의 책 중 이마이즈미 준노스케의 『관우 : 삼국지의 영웅에서 의리와 부의 신이 되기까지』에서도 언급되었듯 사람들을 착취하는 호족 '여웅'을 죽이고 도망쳤다는 내용은 공통적으로 일치합니다. 정사에는 없으나 야사에서는 관우가 떠돌이 장사꾼 노릇을 많이 했으며 이것은 당대의 피지배층들 중에서 가장 천한 일이었다고 하던데, 관우의 출신성분이 어쨌든, 목숨을 걸고 도피해야 했다면 관우가 이런 일을 했다고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인 거 같습니다.
관우가 그렇게 당시 기준으로 천한 일을 전전하면서 후한시대의 모순과 어둠을 목격하고 그것이 훗날 관우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책에서는 추측하는데, 이런 점 때문인지 책에서는 황건적의 난에 대해서 비난이 아닌, 억압받던 당대 민중들이 견디다 못해 일어난 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도 이 황건적의 난입니다만 그에 대한 재평가는 별로 본 기억이 없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관우의 의협을 고찰하면서 관우와 유비의 관계보다 관우와 조조의 관계에 더 치중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우의 협객스런 면모나 관우란 인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에는 분명 유비나 장비와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보거든요.
유비와 관우와의 관계가 훗날 있을 형주 문제로 좀 부정적인 면모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이것은 책에서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참고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는 조조와 관우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지만요.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조조의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칭찬하고 있어 조조의 재평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여기서 쓰이는 『삼국지연의』 는 '김구용'의 『삼국지』에요. 재미있게도 여기서 『삼국지연의』 의 허구에 대해서도 많이 설명해주는데 관우의 오관참육장 같은 이야기는 관우의 의를 미화하기 위해 『삼국지연의』 가 더 극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이것이 순전히 나관중의 창작이라기보단 이미 그 전대인 원대부터 민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나와있는 『삼국지』 관련 영화 중 관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왜 정사 속 일화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취했나 싶었는데 그것도 나름 납득이 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역사 속의 관우의 이미지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정사 속의 기록이 불충분한 것도 사실이고 형주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전까진 관우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형주문제로 들어가면 좀 더 복잡한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관우가 협객으로 대단할지언정 정치가로서는 부족하다는 사실은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다만 번성공격 이후 관우의 죽음까지의 문제점을 오로지 손권의 혼인요청을 거절한 관우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당대의 복잡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실수라고 저자가 지적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꽤 동의하는 바입니다.
관우가 설령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더라도 형주를 계속 넘보던 손권이 관우를 배반할 수도 있었으며 그렇게 했어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이미 그 이전에 정략결혼한 여동생으로 하여금 유선을 납치하려던 전과가 있었던지라 순수한 의도로 손권이 정략결혼건을 꺼냈을리는 만무하고 손권 입장에서도 관우를 찔러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관우의 죽음에 앞서 손권이 그를 회유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 없다고 여겨지는 걸로 봐선, 손권 입장에선 언제든 형주를 얻기 위해 관우를 쳐낼 기회를 넘보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이론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좀 어려운데, 예를 들어 유비와 제갈량이 관우의 번성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은 관우를 버렸다기보단, 관우를 지원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여기선 제갈량의 관우제거설은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제갈량은 유교적 정치가이고 관우는 협객에 가까운 장수이기 때문에 형주를 다루는 그 둘의 입장 차는 또렷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기다 협객으로서의 의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유교적인 상으로 보고 부정적인 입장을 많이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관우를 제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형주 귀속 문제로 인한 트러블을 관우가 알아서 하게끔 넘겨버린 것이라고 하지만은 실제로는 촉의 고질적인 인재부족과 입촉 후의 내정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던 유비 측이 관우를 지원하기에도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요.
형주를 중요하게 보고는 있지만 그것을 담당한 인물이 얼마 없었고, 그래서 관우가 적임자가 된 것이지 관우와 형주를 동시에 버렸다는 말은 안되는 거 같습니다. 이것은 관우를 돕는 책사가 없었다는 것으로도 추측가능한데 거기다 당대가 현재처럼 소식이 원활하게 전해질 수 있던 시대도 아닌지라 형주와 촉의 소통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책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이라면 관우의 죽음에 한해서 연의의 내용을 따라갔다는 건데, 아마 정사에선 자세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기 어려운 구석도 있고 어느 정도 미스터리한 점도 있어서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후반에는 중국의 신앙만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 관우-관제신앙의 흐름도 살펴보는데, 『한국의 관제신앙』에서도 언급했듯이 관제신앙은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의의 영향력인지 관제신앙이 민간에서 힘을 얻고 숙종대에 들어가면 역시 정치적인 의도로 관제신앙에 불이 붙는데 한국의 관제신앙도 중국의 그것처럼 민간에서 받들어지는 모습과 위정자들이 이용한 신앙의 형태는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찾아봤더니 외국의 장수가 우리나라에서 신으로 받들어진 것은 관우가 처음이 아니더군요. 오래전 인기 있던 드라마 『대조영』에서 활약했던 당나라 장수 설인귀 같은 경우도 일부지방이긴 합니다만 장군신으로 무당들에게 받들여졌다는 이야기고 있고, 『설인귀전』이란 소설이 민중에게 인기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민중이 매력을 느끼는 공통적인 요소가 국경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