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읽는 삼국지 : 삼국지 기행』 감상문

01사금 2025. 3. 2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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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읽는 삼국지 : 삼국지 기행』은 저자가 『삼국지』 관련 유적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 사진과 유적을 보면서 겪은 느낌이나 경험담, 그리고 연의와 야사, 정사를 통틀어 『삼국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기행문 겸 『삼국지』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보면서 재밌는 것은 대개의 『삼국지』 유적은 정사에 기반한 것들이나 실제 후한시대의 유적이라기보단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면서 유명해진 곳도 있고, 『삼국지연의』에 기대어 관광상품화한 것도 되게 많다는 겁니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역사적 유적이 아닌 '문학적 유적'이라고도 하더군요. 다만 저자는 『삼국지연의』가 모두 정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원래 역사에 어긋나는 부분도 있으므로 왜곡에 대해선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입니다.

책은 재미난 편입니다. 저자가 유적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유적은 관광지화하기 위해 만들었음에도 홍보가 부족하여 폐쇄된 눈물나는 곳이 있는가 반면, 『삼국지』 관련 유적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관공동상이라거나 혹은 사람들이 돈을 벌게 해달라고 비는 유적은 재물이랑은 별 관계가 없어보이는 곳이라거나... 등등을 설명해주니까요. 하지만 의외로 정사에 기반한 확실한 유적지도 빠지지 않고 존재하기도 하고 어떤 유적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쓰레기장 옆에 덩그러니 존재하는 일도 존재한다지요.

책에서 누누이 『삼국지연의』가 정사와 다르며, 실제의 사실보단 당대의 민중이 받아들인 주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엮여있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약간 반박하고픈 주장이 있는데 예를 들어 조조와 유비의 이미지 구분법은 연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책에선 연의가 조조를 악인이미지를 굳건히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나관중본 연의가 나오기 전까지 민담이나 잡극에서 악인이미지를 담당해온 것은 조조라는 사실인데, 이는 조조가 유능하고 대단한 인물이면서도 민중들에제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조조가 저지른 오점으로 대개 서주대학살을 꼽고,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을 갱살한 것을 다음으로 꼽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서 조조의 유능함과 관대함을 언급하면서 오환군 정벌에서 일어난 양민학살도 언급하긴 한다는 겁니다. 어떤 의도에서 저질러졌건 민중에게 조조가 일종의 원죄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그 학살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났건 조조는 민중들에게 공포스런 이미지로 군림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지요. 이는 형주침공 당시 백성들이 조조가 내려온다는 소리에 유비를 따라 도망친 것과도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이중톈 교수의 『삼국지강의』에서는 이렇게 백성들을 보듬고 피난한 것은 조조도 마찬가지였다고 나옵니다. 조조 역시 형주침공 당시 어수선해진 상황에서 백성들을 안전하게 도피시킨 건 조조도 마찬가지였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의 이런 선행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앞서의 학살이 민중들에게 깊게 각인이 되어서일텐데 그렇다면 왜 당대 민중들은 조조를 피하기 위해 기반도 없는 그야말로 쫓기던 유비를 택하였느냐입니다. 

오히려 『삼국지연의』가 유비의 이미지를 무능과 위선으로 망쳐놓은 것은 아닌가 싶은데요,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당시 난세 속에서 백성들을 상대로 약탈과 학살을 벌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살아남은 군주는 유비 뿐이었단 겁니다. 백성들을 진심으로 생각한 군주들 중 유우란 인물도 있었지만 이 인물은 공손찬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그 일가가 몰살당했다고 하는데,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친민중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군벌은 당시엔 거의 유비뿐이었으며, 오히려 이런 인물은 학살로 얼룩진 근현대사에도 보기 힘든 인물이 아닐런가 싶더군요.

오히려 연의에서는 그 어떤 심리도 유비가 어떤 식으로 민중들에게 다가섰는지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그저 황실의 명분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유비는 황실의 핏줄을 내세우며 말로는 인의를 떠들면서 사람을 배신하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셈이죠. 반면 조조의 서주대학살 같은 경우는 약간의 문장만으로 어물쩡 지나가는 식으로 나올 뿐이며, 원소군 갱살이나 오환족 정벌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으므로 오히려 연의에서 조조의 악행은 덮어졌고 그저 황실을 농락한 역적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버린 셈입니다. 재미있게도 『삼국지연의』의 이 부분은 단순한 선악 구분이라고 비판받을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이나 하층민들의 목숨보다 유교적인 명분을 최우선으로 하는 당대 사상의 한계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데서 비판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재미있는 점은 책에서 지적하는 점으로는 『삼국지』 내의 중화주의입니다. 『삼국지연의』가 최초 등장한 시기는 원말명초-나관중이 이 시대의 사람인데 연의의 탄생은 당시 이민족에게 지배받던 한족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확실히 『삼국지연의』 내에서 이 중화주의적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이 왕왕 있으며 연의 탄생의 바탕이 된 관제신앙, 그리고 『삼국지』 관련 민담이나 극 역시 이민족과 대치하던 송대에 널리 퍼진 경향이 있는데,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이민족 정권인 원과 청은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 한족에게 가장 인기있던 신앙인 관제신앙을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포교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만주족이 세운 청대에 가서 관우의 지위가 가장 높아지며, 현재 중국의 관제신앙 문화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이 청대의 기억이 이어져오기 때문은 아닐런가 싶네요. 관제신앙의 바탕이 되는 것은 충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민간에서 받아들이는 관제신앙의 모습은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과 신앙이란 것이 믿으라 해서 믿어지는 것은 아닌 걸 보면, 관제신앙의 바탕 역시 결국 유비 일행이 쌓아놓은 친민중적 이미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결국 민중이 택한 인물이 연의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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