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관제 신앙』 리뷰
『관우 : 삼국지의 영웅에서 의리와 부의 신이 되기까지』를 리뷰하면서 중국의 관제 신앙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살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리뷰하면서 우리나라에서의 관제 신앙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었는데, 『한국의 관제 신앙』은 중국과는 다른 한국에서 형성된 관제 신앙에 대해 살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은 크게 내용을 두 가지로 나누면서, 중국 쪽의 관제 신앙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상당량에 해당되는 나머지 부분은 한국에서 형성된 관제 신앙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책에서 관제신앙이 가장 처음 한국에 들어온 적은 언제이며, 어떤 식으로 관우가 숭배되어 왔고, 민중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으며, 관우를 직접적으로 신격으로 숭배한 한국의 종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한국 쪽 관제신앙이 처음 유입된 계기는 책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선조 31년[1597]에 명나라 장수 진인이 남묘[관왕묘]를 세운 일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관제신앙은 찾아볼 수 없었으나 정유재란이라는 특수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명나라로부터 불가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으로 유입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관제신앙은 당시 지배층으로부터도 거부당했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적 분위기가 강한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도 도교적 성향을 띤 관제신앙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졌다고도 하고요. 거기에다 당시 관왕묘를 설립하는 것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 또한 높았다는 기록을 보아 민중들 입장에서도 관제신앙은 달갑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형편 와중에서도 조선은 형식적으로나마 관제에 대한 제례를 지켰는데 이것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살핀 정치적인 형태에 불과했습니다. 관제신앙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당시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로 관제를 모신 묘조차 제대로 관리되지도 않았고 관제를 특별하게 숭배하는 믿음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꺼져가던 관제신앙의 불을 다시금 지핀 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다름 아닌 숙종으로 이 숙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다보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쏟아지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관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삼국지연의』가 많이 퍼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관제신앙에 갖는 민중의 태도도 조금은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고요. 숙종이 무척 관우의 팬이었기 때문에 관우를 숭배하고 관제묘에서 직접 제례를 지내는 등의 일을 했다고도 하지만 이런 행동에도 어느 정도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충의의 신으로 여겨지는 관우를 통해 신권을 억누르고 군권을 잡아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 또한 있었다고요. 왕권 강화를 위한 관제신앙의 흐름은 숙종대에 이어 영조와 정조까지 이어졌으며, 순조와 헌종, 그리고 철종 때까지도 관왕묘에 참배하는 행위가 지속됩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좀 더 다른 모습으로 관제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민간측의 관제신앙은 지배층의 관제신앙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는 고종 대 구한말 당시의 관제신앙 부분을 살펴보면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의 국가적 혼란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고종을 비롯한 지배층이 관제의 군신으로써의 위엄에 기대었다면 민간에서 관제는 병을 치료해 주는 치병신에서부터 집안의 액운을 막는 수호신, 거기에다 출산과 자손번영을 들어주는 신격으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 한국의 관제신앙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관제 신앙의 모습은 나중에 신흥종교 쪽으로 옮겨가면서 그 지위가 민간층의 수호신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게 되지요.
지배층의 관제신앙은 대개 나라가 망하면서 흩어지지만 민간에서 형성된 관제신앙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는데 이때의 관제신앙의 형성과정에 대해 책의 거의 반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관제를 특별하게 모시는 종교와 관제만을 따로 모시진 않으나 관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종교에 대해서 언급되는데, 책에 언급된 종교단체들은 선음즐교, 증산교, 관성교, 금강대도, 무량천도, 미륵대도 등입니다. 이 종교의 창시부터 교주, 교단의 숫자, 그 종교에서 차지하는 관우의 위치와 후에 변화된 모습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단순 관제신앙의 변모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사 측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아닌가 싶어요. 재미난 것은 한국의 민간신앙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한국 측 자료만이 아니라 외국 쪽 자료도 중시되는데, 우리나라 민간신앙 중에서 관제를 중심으로 모신 종교였던 관성교에 대한 연구 부분에선 독일 민속학자인 프루너란 분의 자료가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관성교는 명맥을 잇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설명은 덤.
책에 언급된 관제를 모시는 종교단체들은 시간이 지나서 명맥이 끊기거나 축소된 경우가 많은데, 이 이유에는 종교들이 스스로 와해되거나 사람들의 관제신앙 자체가 엷어졌거나 하는 이유도 있고, 관제묘를 정부 측이 관리하게 되면서 관광지화 되었거나 근대화운동이 일면서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관제신앙이 흔들린 탓도 있다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우에 대한 숭배가 존재하는 종교는 증산교와 미륵대도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의 관제신앙의 명맥은 아예 끊어진 것은 아니나 중국 쪽의 관제신앙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중국의 관제신앙에서 관우는 재물의 신이나 전쟁의 신으로 여겨지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관우가 수행자를 보호하는 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 혹은 구원자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과거 민간신앙에서 관우가 개인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믿어지기도 했으나 현재에는 그런 기복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의로움을 추구하는 형태에 가깝게 관우를 모시되, 관우가 주된 신격이 아니라 다른 여러 신들과 함께 모셔진다는 것 또한 특징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구원자를 보호하는 수호신의 모습으로 즉 한국의 관제신앙에서는 물질적인 측면은 사라지되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중시하는 모습으로 변모하였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는데, 어찌 보면 이건 정사와 연의에서 그려진 관우의 이미지와도 많이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단원에 의하면 관제신앙의 여러 형태에 대해 짧게 요약하며 글을 맺고 있는데, 이 관제신앙이 사대주의의 흔적이며, 우리 민족적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나름 일리 있는 말이겠지만 저자의 마지막 말에 따르면 올바름을 추구하는 신으로서의 관제의 모습에서 제대로 된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책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면 "현실적인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할 이상적인 인격이 관우에게 투영되어 결국 그를 관제라는 신으로 믿게 했다."라는 말이 바로 관제신앙의 기저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링크는 한국의 관제신앙의 변화를 다룬 기사와 조선시대 관제신앙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료로 책과 함께 보면 이해가 더 빠를 내용들이라 같이 첨부해 봅니다.
※ 참고 : 조선의 영욕과 함께 뜨고 진 ‘관우' https://v.daum.net/v/20100724140616575
조선의 영욕과 함께 뜨고 진 '관우'
서울 동대문을 벗어나 신설동 쪽으로나아가면 이내 길 오른편에 '동묘'(보물 제142호)가 나타난다. 동묘는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를 모시는 사당으로 흔히 관묘(關廟), 관성묘(關聖廟), 현성묘(
v.daum.net
☆ 역사 저널 다큐멘터리 : 관우는 왜 조선에서 신이 되었나? https://youtu.be/H9-Wx38lg1M?si=1qyn02EGt-Y6zUz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