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판 新서유기』 - 서량녀국 혼인 소동 에피소드 감상문
2010년도 드라마 『절강판 新서유기』의 서량녀국 에피소드는 크게 아쉬울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 서량녀국 에피소드는 전체 이야기 중 28화에서 32화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원작 소설도 제일 흥미진진한 6권 중반에 실려있는 이야기인데 중반부터이긴 했지만 TV 방영 당시 제대로 본 것이기도 하며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어 삼장 일행이 서량녀국에 들어서 자모하물을 잘못 마시는 이야기를 시발점으로 서량녀국의 혼인까지 한 나라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유기』 통틀어 가장 폭소할 만한 삼장과 팔계의 임신 에피소드가 여기에 있었는데 이 임신 에피소드 자체는 원작과 큰 차이 없이 전개되긴 했지만 역시 드라마 특유의 메시지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개그적 부분도 많이 충당되어 자신들이 물을 잘못 마셔 임신했다는 것을 깨달은 팔계가 경극배우 흉내를 내며 한탄하는 모습도 추가되어 있고요. 하여간 이야기는 다시 본편으로 들어가 오공은 낙태천의 물을 구하기 위해 여의진선을 찾아가고 여의진선은 조카 홍해아가 부모(우마왕과 나찰녀)와 생이별하게 된 것이 오공의 탓이라 여겨 그를 공격합니다. 이 여의진선은 원작 소설에서 그저 개그성 짙은 악당 역할이었다면 드라마에선 나름 품위가 더해지는데 드라마엔 제자가 등장하지 않으므로 오공이 오정을 데리고 이차 찾아왔을 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다가 된통 당하는 추태는 연출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소설에선 그저 곤란에 빠진 여자들에게 제물을 취하는 듯 한 소인배적인 악당이었다면 여기선 그가 낙태천을 차지한 데에 이유가 있음을 그리고 있어요. 오공은 처음 그가 탐욕 때문에 낙태천물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여겼지만 드라마의 여의진선은 여자들이 내키는 대로 낙태천 물을 마신다면 그만큼 어린 아기들이 태어나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좀 더 까다로운 절차를 도입했다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애꿎은 남성이 물을 마셨을 경우에는 보통 그냥 건내 주지만 이번에는 악연이 된 오공이 찾아왔기 때문에 싸움이 붙은 셈이었죠.
즉 드라마의 여의진선은 자기 나름 도인으로서의 사명 때문에 낙태천을 지키고 있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낙태천의 숨은 이야기는 바로 서량녀국이 갖는 고뇌와 연결되는데요. 서량녀국의 자모하 임신 에피소드와 삼장이 서량녀국 여왕과 만나는 이야기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각색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량녀국의 수도에 들어선 오공과 오정은 지나가는 여자들 중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쌍둥이인가 여기면서도 비슷한 얼굴이 많은 것에 의문을 느끼는데 이 서량녀국은 빈부격차와 세습으로 인해 고립되고 폐쇄되어 가면서 내부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그 때문에 애를 낳는 것을 거부하게 된 나라란 언급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의 해프닝으로 벌어진 가난한 집안의 여성이 자모하 물에 실수로 빠져 임신한 뒤 삼장 일행이 임신했을 적 신세를 진 노파가 그 보답으로 받은 낙태천의 남은 샘물을 훔치다 발각되어 끌려오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사정을 알게 된 여왕이 그녀의 생계를 보장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 사건으로 서량녀국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나고 나라를 변화시킬 방법을 삼장을 통해 여왕이 찾는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소설에선 단순 하나의 장애물로 등장했던 서량녀국의 여왕과의 혼인 에피소드도 일종의 멜로 구도와 더불어 나름 메시지를 띄게 되었다는 거죠. 어쨌든 서량녀국의 이야기는 원작과는 달리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내용이 복잡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나서 느끼지만 이 드라마의 특징이 단순 불경 얻으러가는 모험담이 아닌 삼장법사에 더 치중을 한 삼장의 성장과 구제 이야기인 것으로 보아야 될 거 같아요. 흑풍산 에피소드에서도 금란가사를 도둑질한 승려들이 용서를 구하자 삼장이 그들에게 불법을 전수하는 이야기가 추가되었던 것처럼요. 원작 서량녀국 이야기는 여왕이 삼장이 귀인이란 것을 알고 혼인을 추진하려다가 손오공 일행이 혼인하라고 부추기는 척하면서 도술을 써서 통관문첩과 삼장만 빼돌리고 도망가려다 비파동 전갈요괴에게 삼장이 납치되어 싸우게 되는 내용인 반면 여기선 서량녀국 자체의 문제점인 오랜 폐쇄성으로 인해 세습이 일반화되자 자신의 아이들이 같은 꼴이 되는 게 싫다고 더 이상 여자들이 아이를 낳기 싫어하여 출산율이 떨어지고 태어나는 아이들마저 비슷해진다는 어쩌면 현실을 풍자하는 면모까지 느껴졌습니다.
삼장은 자신의 입장도 입장이려니와 반드시 남자가 와야만 서량녀국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왕에게 일러주는데요. 중국의 왕들은 남자만 있지만 백성을 위해 목숨 거는 이들은 없다는 말은 드라마상의 대사뿐이나 뭔가 뼈가 느껴진다는 건 저만의 감상이었을까요. 삼장이 여왕을 타이르느라 머무는 동안 자모하의 물을 마신 서량녀국 백성이 독에 중독되어 죽고 음탕한 중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수수께끼의 돌이 발견되어 강에 독을 탔다는 누명과 강이 피로 물든 원인을 삼장일행이 뒤집어쓰는 등 복잡한 일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손오공은 도술을 이용하면 금세 떠날 수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고난을 피해 가는 법이 아니라는 삼장의 명 때문에 결국 누명을 알아서 벗겨야 할 판이 되어 버립니다.
이 모든 행각의 범인은 나라의 국사- 정확하겐 국사의 몸을 뺏은 비파요괴로, 일단 비파동에서 숨어살던 전갈요괴가 어떻게 국사의 몸을 빼앗았는지 나름 언급되는데 삼장일행이 오기 며칠 전 숲에서 국사는 전갈에 물렸다는 말이 나오며 아마 이것은 삼장 일행이 올 것임을 안 전갈요괴가 덫을 놓은 것이었겠죠. 전갈요괴는 여왕의 몸을 뺏아 삼장과 혼인하려고 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패하자 삼장일행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들을 붙잡아둔 뒤 여왕을 독살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 뒤 삼장을 어찌해 볼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국사를 수상쩍게 여기던 손오공이 조사를 통해 모든 진상을 밝히자 본색을 밝혀 삼장을 납치합니다. 여기서 자모하의 물이 피로 물든 것은 저팔계와 사오정이 강의 상류를 조사하다가 녹슨 철을 발견하면서 이유가 밝혀집니다.
또 삼장일행을 도망시키려다 들킨 나머지 연금된 여왕을 독살시키려던 음모는 태사가 여왕 대신 여왕이 먹을 약을 먹었다 중독되면서 진상이 드러납니다. 전갈요괴의 독꼬리 때문에 곤란을 겪던 손오공 일행은 관음보살의 조언으로 묘일성관을 데려와 요괴를 제압하고 독에 중독된 태사를 고치는 등 사건을 해결한 뒤, 여왕 일행의 배웅을 받으며 나라를 떠납니다. 요괴와의 싸움에선 특이하게 삼장이 요괴의 유혹을 뿌리치고 법력으로 요괴의 비파를 터뜨리는 모습까지 묘사되고요. 또 여러모로 삼장이 버프를 받았는데 소설 상에서는 말 못 할 민폐 덩어리지만 역사 속에선 엄연한 위인이니 저렇게 묘사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겠다 싶더군요.
거기다 손오공의 천궁소동 이후로 알 수 없던 의남매인 교마왕의 행방에 대해서 서량녀국의 여왕으로 환생했을지 모른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고요. 이후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화염산의 우마왕 에피소드란 점을 알면 드라마 『서유기』 중반까지는 손오공의 과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셈입니다. 하여간 묘일성관의 도움으로 이 요괴를 물리친 뒤 일행은 서량녀국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떠나는데요. 원작과는 다르게 삼장의 러브라인이 두드러진 에피소드인지라 상당히 애틋하게 묘사됩니다. 여기서 삼장과 여왕 사이에 감정선이 미묘한데 여왕 쪽에서 애정이 확실하다면 삼장법사는 연민과 애정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서량녀국 에피소드는 좀 더 현대적인 각색을 추가한 느낌입니다.
https://youtu.be/NcNOfgLL4 z0? si=UZVHYF_up9s-KKj-
그런데 승려를 사랑한 여인이 애정을 이루는 대신 승려와 의남매를 맺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는데 이번 서랑녀국 여왕이 떠나는 삼장을 '오라버니'라 부르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나 싶었습니다. 여러모로 드라마의 OST '아심 불변(我心不變)’이 가장 잘 어울린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재미나게도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항상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던 저팔계의 활약이 적었는데 그 이유가 산후후유증 때문이라는 것. 누명을 쓰고 삼장일행이 연금당하자 저팔계가 무슨 산후조리가 이러냐며 투덜대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손오공에게 끌려나갈 때도 산후조리해야 한다면서 투덜댑니다.
저팔계가 일단 자리를 비켜준 탓에 사오정의 비중은 늘었는데 보면 가장 삼장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사오정으로 보여요. 하나 또 눈여겨볼 것은 주인공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인데 삼장이야 원래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손오공도 동생들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반면, 저팔계는 다른 형제들을 부를 때 손오공은 사형 사오정은 사제라고 부르고, 사오정은 손오공을 대사형 저팔계를 둘째 사형이라고 부르더군요. 드라마상에서 쓰이는 전체적인 CG는 2010년도 드라마라는 한도에서 본다면 제법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분장술에서 조금 아니다 싶은 점도 있는데 묘일성관 같은 경우 본체가 수탉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얼굴에 수탉의 부리 모양을 연상시키는 분장을 하는 것은 좀 어색해 보이더라고요. 손오공의 도술도 좀 더 다양하게 각색되었는데 곤충 등으로 변신하여 이야기를 훔쳐 듣거나 몰래 빠져나간 뒤 분신술로 대체 몸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원작 그대로이지만, 삼장과 여왕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CCTV처럼 훔쳐본다거나 활에 맞아 다친 삼장을 치료한다거나 은신술로 사람들 눈을 피하는 등 좀 더 다양한 모습이 드러납니다.